대미 선제 베팅한 기업들, 관세전쟁 속 안도의 한숨

입력 2025-02-12 01:1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을 지핀 관세 전쟁 속에 국내 산업계에선 미국 내 생산기지 구축 여부에 따라 같은 업종 내에서도 표정이 갈린다. 선제적으로 생산 기지를 구축했던 기업들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을 조기에 받은 데다 관세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솔루션은 올해 IRA에 따라 미국 정부가 모듈 생산량에 따라 지급하는 첨단제조세액공제(AMPC)를 최대 1조원 수령할 예정이다. 이번 목표치는 지난해 수령액(5551억원)의 배 수준이다. 이는 올해부터 한화큐셀(한화솔루션의 태양광 부문)의 미국 카터스빌 공장이 가동되는 데 따른 것이다. 한화큐셀의 현지 태양광 모듈 생산 능력은 기존 연간 5.1기가와트(GW)에서 8.4GW로 늘어났다.

한화솔루션의 막대한 보조금 수령은 일찌감치 미국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결과다. 미국 상원은 2021년 6월 IRA의 전신이 됐던 태양광 에너지 제조업법(SEMA)을 발의했다. 이후 발의자인 존 오소프 민주당 상원의원 등과 협의한 한화솔루션은 2022년 상반기 조지아주 달튼 공장을 증설하기로 결정했다. IRA 법안이 발표되기 수개월 전이었다. 이런 공격적인 투자에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미국 내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력이 바탕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내 대다수 기업들이 IRA의 불확실성을 우려해 초기 투자에 보수적으로 접근했다.

단적인 예로 같은 태양광 업체인 OCI홀딩스는 태양광 모듈 생산 자회사 미션솔라에너지(MSE)가 샌안토니오에 모듈 공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생산 능력이 현재 연 500㎿(메가와트) 수준에 불과하다.


IRA의 AMPC는 2023년부터 10년간 사업자에게 세액공제를 전액 현금으로 지급해준다. 공장을 늦게 가동할수록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지는 구조다. 배터리 업계 내에서도 미국 투자가 빨랐던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수혜를 봤다. IRA 시행 전부터 현지에서 대규모 공장을 가동 중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2년간 AMPC 누적 수령액이 각각 2조1568억원, 9094억원이지만 뒤늦게 현지 공장을 세운 삼성SDI는 수령액이 898억원에 불과하다.

미국 내 생산 거점 확보 이점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더욱 부각되고 있다. 현지에서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기업들은 관세 전쟁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다.

같은 업종 내에서도 현지 공장 보유 여부에 따른 격차가 커질 전망이다. OCI는 태양광 셀 제조 북미 합작법인(JV) 설립 계획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지만 공장 가동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주요 철강 기업들도 미국 내 공장을 건설해 고관세를 피한다는 입장이지만 공장 가동 전까지 출혈이 불가피하다. 산업계 관계자는 “업종 유불리뿐 아니라 미국 생산 기지 확보 시기가 국내 수출기업들의 향후 실적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