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의 북미 시장 의존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기업의 북미 매출이 증가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이 철강·알루미늄을 넘어 확산할 경우 한국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1일 리더스인덱스가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북미 매출을 별도 공시하는 100개 회사를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북미 매출은 2023년 3분기 누적 262조2714억원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 31조5231억원으로 증가했다. 1년 만에 51조2516억원 늘어 19.5%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조사 대상 기업의 전체 매출에서 북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25.2%에서 28.1%로 2.9% 포인트 늘었다. 한국 기업들의 북미 시장 의존도가 높아진 것이다.
업종별로 보면 IT·전기전자 분야의 북미 매출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이 업종에서 지역별 매출을 공시한 12개 기업의 북미 실적은 2023년 3분기 누적 80조646억원에서 2024년 3분기 누적 114조2517억원으로 42.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기업들의 매출 증가율(26.1%)을 배 가까이 웃돌았다. 특히 고대역폭 메모리(HBM)로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의 북미 매출은 이 기간 3배 가까이 늘었다. 미국 내 전력 수요가 증가하면서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의 북미 매출도 각각 57.3%, 12.3% 증가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북미 매출도 각각 17.0%, 12.0% 늘었다.
이런 흐름은 지난해 대중·대미 수출 격차가 2003년 이후 21년 만에 최소치를 찍은 현상의 연장선 위에 있다. 북미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미국 비중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 자리를 미국에 내줄 공산이 크다. 중국 내수 부진과 중간재 자립 강화로 한중 공급망 분업 체계가 흔들리면서 대중 수출은 감소하는 흐름이다. 반면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라 대미 투자와 수출은 둘 다 증가세다.
철강·알루미늄을 겨냥한 관세로 포문을 연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가 한국의 주력 품목인 반도체, 자동차 등으로까지 확산하면 북미 매출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국내 기업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첨단산업 분업 체계 및 공급망을 강화해 트럼프 2기에도 미국과 상호보완적인 교역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