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정치적 성향과는 별개로 성경적 가치관과 자신의 직접적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의 정책과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라이프웨이리서치가 지난달 13일부터 21일까지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밝힌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지난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33%)보다 도널드 트럼프(61%)를 더 많이 지지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 성향이 트럼프 정부 정책을 향한 맹목적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응답자들은 ‘미국 내 이민자 중 추방의 우선순위에 둬야 할 사람’에 대한 질문에 폭력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67%)을 가장 많이 꼽았다. 반면 벌금을 낼 수 없는 사람(30%)이나 미국 시민과 결혼한 사람(14%) 등을 추방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은 적었다. “모든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과 달리 사회적 위협 요소가 될 만한 경우가 아니라면 불법 체류자를 추방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응답자들의 이 같은 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성경(23%)이었다. 이어 일상에서 관찰한 이민자들의 삶(16%) 언론(14%) 가족 및 친구(10%) 등이 요인으로 꼽혔다.
기독교 전문가들은 교계의 정치적 성향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때에 눈여겨볼 만한 조사라고 해석했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11일 “한국교회 성도 중에서도 신앙적 세계관을 토대로 건강한 통찰력을 가진 이들이 많은데 ‘극우 진영’에서 나오는 선동적인 메시지가 기독교를 과잉 대표하는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기도회를 한 번 하더라도 맹목적으로 ‘어떤 결과를 주시옵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며 자기를 성찰하고 기독교인의 역할을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욱주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도 “예배 중이나 교회 내 소그룹 모임에서 사회적 이슈가 언급될 때 성도 스스로 성경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습관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