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시설 진형고등학교 졸업생 배화자(88·창신성결교회) 권사는 만학도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새벽예배를 드리고 난 뒤엔 왕복 세 시간에 걸친 등굣길에 올랐다. 매일 아침 관절염약을 챙겨 먹고 서둘러 경기도 남양주 집을 나서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학교까지 다닌 게 4년이나 됐다. 여러 차례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야 했지만 늘 등굣길이 설렜다. 배 권사는 11일 중고교 과정을 모두 마치고 꿈에 그리던 졸업장을 받았다.
“학교에 빨리 오고 싶어서 힘든 줄도 모르고 다녔어요.”
이날 서울 종로구민회관에서 열린 진형중고교 제18회 졸업식에서 만난 배 권사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배 권사는 검정색 졸업 가운이 신기한 듯 연신 이를 어루만지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졸업생 중 최고령자이자 졸업생 대표로서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으로부터 졸업장을 건네받았을 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배 권사는 1970년 5남매 중 다섯 살이던 큰아들과 세 살배기 막내아들만 데리고 고향을 떠나 무작정 서울로 왔다. 세 돈 반짜리 금반지를 팔고 남은 1만500원이 전 재산이었다. 서울 동대문구의 빈대 가득한 월세 200원짜리 여인숙에 머물고 포장마차 일을 도우며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보리가 섞인 쌀 한 되를 겨우 사 아이들을 먹였다. 그마저도 없을 땐 사카린을 탄 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평생 동대문시장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며 아이들을 키워냈다.
“어려서부터 예수님만 믿고 살아왔기에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었어요. 여호수아 1장 9절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는 말씀만 생각하면 항시 마음이 편했어요.”
배 권사의 담임교사 김지영(46)씨는 “권사님께서 너무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해오셨다”며 “힘든 가운데에서도 불평 없이 감사함으로 채워가며 긴 학업 여정을 마치신 권사님의 앞으로 삶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졸업식에서는 배 권사처럼 만학의 길을 걸어온 평균연령 67세의 만학도 611명이 중고교 졸업장을 받았다. 그중에는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미싱을 돌리며 옷 만드는 일을 하느라 배움의 기회를 놓쳤던 손성은(58)씨도 있었다. 손씨는 손에 들린 고교 졸업장을 바라보며 “교회에서 봉사를 해도 늘 초등학교밖에 못 나온 나 자신을 보며 자존감이 떨어졌는데 이렇게 졸업해 소원을 이루니 세상을 다 얻은 듯하다”며 감격의 눈물을 훔쳤다. 이어 “기도하던 제게 하나님께서 간호조무사의 꿈을 꾸게 해주신 만큼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 예배자로 바로 서고 싶다”고 덧붙였다.
홍형규 교장은 “이들이 걸어온 길은 희망을 향한 도전의 여정”이라며 “배움을 멈추지 않는 용기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이재식 이사장은 “교육은 단순한 학력 취득을 넘어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기회”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