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민주당’을 44번, ‘이재명’을 18번 언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를 말할 때도, 반도체특별법과 추가경정예산을 설명할 때도,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도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입에 올렸다. ‘국가 위기 유발자’ ‘헌정질서 파괴자’ ‘정치적 모반 행위’ 등 원색적 표현을 동원해 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을 채웠다. 본회의장 민주당 의석에서 “여당 대표 연설인데, 왜 야당 대표 얘기만 하느냐”는 말이 나올 만큼 사안마다 이 대표 비판으로 귀결하는 ‘기·승·전·이(이재명)’의 논리를 폈다. 개헌을 촉구한 것 말고는 집권여당 대표가 내놨어야 할 위기 극복의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보수 결집용 진영 대결 메시지만 가득할 뿐, 첨예한 갈등을 풀어갈 통합의 메시지는 찾을 수 없었다. 매우 실망스럽다.
비상계엄 사태는 여야 정치권이 깊이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특히 정부와 함께 국정을 짊어지는 여당은 더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 사태를 바라봐야 한다. 권 원내대표는 비상계엄을 사과하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지만, “그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며 민주당의 29차례 탄핵소추 등 이른바 ‘입법 폭력’을 장황하게 나열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정 혼란의 주범은 민주당 이재명 세력”이라면서 계엄 사태의 책임이 민주당과 이 대표에게 있다는 주장을 폈다. ‘야당 때문에 계엄을 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어논리를 그대로 차용했고, 현 상황을 초래한 극단적 대결 정치의 시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의 위기는 여야의 후진적 정치가 빚어낸 합작품이다. 그것을 반성하고 정치의 쇄신을 호소해야 할 자리에서 퇴행적인 정쟁의 언어만 되풀이했다.
이는 국민의힘이 여전히 강성 지지층과 반(反)이재명 정서에만 매달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권 원내대표 연설은 ‘이재명은 안 된다’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이 대표에 대한 반감으로 넘어서려는 전략은 혐오의 정치판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정치 쇄신을 실천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정상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