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으로 논란이 됐던 안건을 수정의결했다.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인권침해에 아무런 의견을 표명하지 않던 인권위가 내란수괴 혐의로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을 동시에 받는 윤 대통령의 권리 옹호를 위해 의견을 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인권위에 대거 집결해 진보단체 및 인사들의 출입을 막고 건물을 점거하며 혼란을 일으켰다.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인권위 사망의 날”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인권위원 10명은 서울 중구 인권위 전원회의장에서 4시간가량 안건에 대한 찬반 논쟁을 벌였다. 그 결과 ‘윤 대통령 탄핵 사건 심리 시 형사소송에 준하는 엄격한 증거조사를 실시하고, 수사기관은 불구속 수사 원칙을 유념하라’는 등의 내용이 안창호 위원장과 강정혜·김용원·이충상·이한별·한석훈 위원의 찬성으로 채택됐다. 안건에 반대한 남규선 상임위원과 원민경, 김용직, 소라미 비상임위원 등 4명은 오는 17일 정오까지 반대 의견을 정리해 제출하기로 했다.
이 안건은 당초 지난달 13일 상정 예정이었지만 시민사회단체 및 야권의 반발 등으로 두 차례 연기됐다. 이에 윤 대통령 지지자들과 보수 유튜버 수십 명은 오전 8시30분부터 인권위 지하 주차장, 비상계단 등을 점거하고 출입을 막았다. 같은 시각 정문 앞에선 ‘탄핵 무효’ 집회도 열렸다. 경찰은 인근에 기동대 2기, 약 180명을 배치해 현장을 관리했다.
전원회의장이 있는 14층에선 유튜버 A씨가 영화 마블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 옷을 입고, 방패를 든 지지자와 다른 유튜버 등을 진두지휘했다. A씨는 “안 위원장이 회의장에 무사히 들어가게 해야 한다. 좌파들의 회의 방해를 통제해야 한다”며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 김세의 기자님이 막고 있으랍니다”라고 외쳤다. 낮 12시쯤 현장에 도착한 김씨는 “여러분이 지켜줘 정말 든든하다. 인권위 결정에 따라 윤 대통령의 거취가 결정된다”며 이들을 독려했다.
지지자들은 인간 띠를 만들어 엘리베이터 문 앞을 막아섰다. 그러면서 14층에 내리는 사람들에게 소속과 방문 목적을 일일이 물었다. 이른바 ‘사상검증’도 시도했다. A씨는 “이재명, 시진핑, 김정은 개XX”를 크게 외쳐보라고 요구했다. 또 일부 유튜버들은 “채증을 위해 선글라스와 마스크 등을 벗어 달라”며 지지자들의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다. A씨는 시각장애인 B씨가 14층에 내리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내릴 수 없다”며 출입을 막아섰다.
이들은 일반 시민뿐 아니라 현장을 찾은 기자들에게도 일일이 매체명을 물으며 “얼굴이 좌파처럼 생겼다”고 조롱과 위협을 가했다. 서울 중부경찰서 소속 경찰관 3명과 청원경찰 1명이 있었지만, 이들에게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앞서 야당 추천 위원들이 주도한 비상계엄에 대한 인권위 직권조사 및 의견 표명의 건은 정족수 미달로 기각됐다.
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