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노동 유연화”… 좌·우 깜빡이 다 켠 이재명

입력 2025-02-11 02:38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주4일제’와 ‘정년 연장’, ‘보편적 기본사회’를 전면에 내세우는 청사진을 내놨다. 최현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첨단산업 기업들이 노동을 착취하고, 노동시간을 늘려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겠다는 게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특별법에 ‘주52시간 예외’ 조항 도입을 시사했다가 숨 고르기에 들어간 이 대표가 ‘총노동시간 연장 반대’라는 원칙은 깰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최근 실용주의를 내세워 경제·안보 분야 ‘우향우’를 하던 이 대표가 노동·복지 문제에서 좌측 깜빡이도 넣으며 전통적 진보 지지층에도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장시간 노동 5위로 OECD 평균(1752시간)보다 한 달 이상(149시간) 더 일하고 있다”며 “장시간 노동, 노동 착취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은 형용모순”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삼성도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특히 “특별한 필요 때문에 불가피하게 특정 영역의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더라도, 그것이 총노동시간 연장이나 노동 대가 회피 수단이 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도체 연구·개발 근로자에 대해 주52시간제 예외 규정을 두자는 여당 주장에 부정적 뜻을 밝힌 것으로 읽힌다. 이 발언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주52시간제에 대한) 진심은 뭔가” “고용의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항의하자, 이 대표는 “품격을 좀 지키시라니까”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여야의 야유와 박수 소리도 교차했다.

이 대표는 좌우 이념을 뛰어넘는 실용주의 기조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진보정책이든 보수정책이든 경제를 살리는 데 유용한 처방이라면 총동원하자”고 제안했다. 집권 청사진으로 제시한 ‘잘사니즘’ 실현을 위해서라면 어떤 정책도 수용할 용의가 있다는 뜻이다. 이 대표가 성장 우선 담론을 앞세우는 동시에 ‘기본사회를 위한 회복과 성장 위원회’ 설치를 선언한 것도 중도층과 전통 지지층을 동시에 고려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대표는 11일에는 방송인 김어준씨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당면한 이슈 관련 구체적인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이 대표의 김씨 유튜브 방송 출연은 4·10 총선을 앞둔 지난해 3월 이후 11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대표연설에 대해 “‘잘사니즘’이 아닌 ‘뻥사니즘’”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이 대표가 말뿐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 주길 바란다”며 “우클릭해도 좋으니 ‘우향우’ 깜빡이를 켰으면 계속 우측으로 달려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나경원 의원은 “그동안 줄탄핵, 일방적 예산 삭감, 의회 독재로 헌정을 파괴한 데 대한 반성은 한마디도 없이 적반하장의 주장만 되풀이했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나 의원은 이 대표가 제안한 국민소환제에 대해서도 “이 대표가 국민소환제 1호 대상이 돼야 할 텐데, 이 주장을 하는 것도 코미디”라고 말했다.

박장군 정현수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