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전쟁’의 범위와 강도를 키우고 있다. 앞서 캐나다, 멕시코, 중국을 관세로 압박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9일(이하 현지시간)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고, 11~12일에는 모든 국가에 대해 대미 관세와 동등한 세율을 매기는 상호관세 조치를 예고했다. 세계 각국은 미국의 관세 전쟁에 맞대응을 경고하면서도 자국의 예외를 인정받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 수입 물량의 15%를 차지하는 유럽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강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10일 “EU 수출상품에 관세를 부과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본다”며 “유럽 기업과 근로자, 소비자 이익을 부당한 조처에서 보호하기 위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총선 토론회에서 미국 관세에 맞설 대응 방안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은 1시간 내에 대응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24시간 내에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해 관세 면제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앨버니지 총리는 이날 의회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논의하기로 예약했다”며 “호주가 모든 철강·알루미늄 관세에서 면제될 수 있도록 미국에 계속 주장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카드가 실제 관세 부과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거래와 협상을 위한 지렛대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EU 외교관은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 방침이 빠르게 철회됐다며 “미국의 관세 부과는 궁극적으로 협상을 하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월스트리저널에 말했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 인상에 맞서 10일부터 보복관세 조치를 발효했지만 타협을 통해 무역전쟁을 피할 가능성을 계속 모색하고 있다. 중국 관영 영문 매체인 차이나데일리는 이날 ‘미국의 관세전쟁은 모두가 패배하는 상황을 만든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화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대화를 촉구하면서도 “중국은 외부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해로운 일방주의에 반대하는 다른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할 준비가 돼 있고 그럴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를 우려하는 대만은 이번 주 고위 경제 관료들을 미국에 파견할 예정이며 미국산 가스와 석유를 더 많이 구매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대만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인 TSMC는 대미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연합보 등 대만 언론들은 10~11일 이틀간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 단지에서 열리는 TSMC 이사회에서 1.6㎚(나노미터) 공정 신규 건설안 등과 관련한 투자가 결정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도 자국에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해 미국이 일본에서 수입한 철강은 118만t으로 전체 수입량의 약 4%를 차지하며 국가별로는 6번째로 많다며 철강 관세 대상국에 일본이 포함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일 간의 실효 관세율을 계산하면 일본은 평균 3.2%, 미국은 평균 1.4%로 일본의 관세율이 미국의 2배 이상이라며 “미국이 상호관세를 기준으로 일본 농산물에 대해 관세율을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