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잘사니즘’이란 구호를 꺼내들었다. 실용주의로 평가되던 ‘먹사니즘’을 발전시킨 거라고 한다. 먹고사는 것을 넘어 다 함께 잘살자는 뜻의 이 구호는 먹사니즘의 우클릭에 다시 좌클릭을 더한 것이었다. 이 대표는 최근 중도층을 겨냥해 성장 담론을 집중 발신하며 트레이드마크인 기본사회 정책의 철회를 시사했는데, 이날 돌연 ‘기본사회를 위한 회복과 성장 위원회’를 설치하겠다면서 이를 다시 들고 나왔다. 진보적 기본사회를 외치다 보수적 성장론으로 선회하던 그의 정책은 이제 ‘기본사회+성장’이 됐다. 둘을 버무려 붙인, 잘사니즘의 다른 이름 ‘공정성장’은 문재인정부가 결국 폐기한 소득주도성장을 떠올리게 했다.
기본사회 성장론은 좌우를 아우르는 실용주의보다 ‘표퓰리즘’에 더 가깝게 들렸다. 실제 적용 사례일 반도체산업 주 52시간제 예외와 관련해 이 대표는 연설에서 “첨단기술사회로 가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 4일제 국가로 가야 한다”고 했다. 중도층 표심을 향해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수용할 듯 말하더니, 노동계 등 지지층 표심이 심상치 않자 갑자기 노동시간을 더 줄이자는 주장을 꺼냈다. “인공지능과 첨단기술에 의한 생산성 향상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져야 한다”면서 정작 그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 노동시간 유연화는 건너뛴 채 주 4일제를 들고 나왔다. 이런 논리적 구멍은 기본사회 성장론을 진지한 성찰의 결과물로 보기 어렵게 한다.
40분 넘게 이어진 이 대표 연설은 이밖에도 주요 대목마다 왠지 공허하다는 느낌을 줬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약속했는데, 그는 이미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했다가 직접 뒤집은 전력이 있다. 그런 제도 혁신을 말하면서 현 탄핵 정국의 근원적 개혁 현안인 개헌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인공지능부터 제조업까지 산업의 모든 분야를 망라해 선거 공약하듯 정책을 내놨지만, 대부분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갖고 진작 해야 했던 일이었다. “정치가 앞장서서 소통과 토론을 통해 미래를 만들자”는 대목은 지난 2년 반 동안 그가 주도한 극단적 대결 정치를 지켜봤던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 대표는 “스스로 변하지 못하는 민주당이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겠냐는 국민 질문에 우리도 성찰을 거듭하겠다”고 역설했다. 제1당 대표로서, 대선 주자로서 고심해 준비했을 내용이 이런 인상을 주게 된 상황에 대해서도 그처럼 진지하게 되짚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