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 침체에 국내 건설업계가 해외사업을 새로운 돌파구로 모색하고 있지만 최근 급등한 환율이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미수금 리스크’가 없는 정부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사업이 건설사들의 관심을 끌면서 업계는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정부에 환 헤지 수단 도입을 요청하고 있으나,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10일 기획재정부 및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주요 건설사들은 기재부와 실무진급 간담회를 갖고 EDCF 공사비 지급과 관련한 업계 애로사항을 논의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간담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 이달 중 기재부에 제도개선 건의사항을 정식으로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건설업계는 최근 EDCF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한국정부가 개발도상국에 사회기반시설(SOC) 등 인프라 지원을 하는 공적개발원조(ODA) 프로그램이다. 현지 수주에 참여한 건설사들은 한국정부와 수원국(개발도상국)이 맺은 차관계약(국가 간 돈을 빌려주고 갚겠다는 약속)에 따라 한국수출입은행에서 공사비를 원화로 받는다.
그러나 최근 환율 급등에 인건비, 원자재 등 현지 통화지출이 늘어나 환차손이 커지자 이를 보전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업계는 환차손을 보전하는 방식 중 하나로 2009년 폐지된 최소운영수입보장(MRG)제도의 부활을 주장한다. 민간사업자가 SOC사업 운영 시 손실이 나면 정부와 공공기관이 최소 수익기준 대비 차액을 보전하고, 이익이 나면 초과수익 일부를 환수해 최소 수익을 일정 기간 보장하는 제도다. 다만 기재부는 수익추구형인 MRG제도는 개발도상국을 원조하는 EDCF 사업 취지와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EDCF 사업에서 건설사들은 시공만 담당하고 사업운영은 하지 않아 MRG와 적용방식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이같은 요청은 국내 건설경기의 부진으로 해외에서 신사업 발굴이 절실해진 상황과 맞물려 있다. EDCF 사업은 한국정부가 지원 대상국과 계약을 맺고, 해당 국가는 한국 건설사들을 대상으로 발주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EDCF 사업의 발주 규모가 조(兆) 단위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 건설사는 수주 과정에서 해외 건설사와 경쟁할 필요가 없고, 정부가 공사비 지급을 보증하므로 이 사업을 매력적인 기회로 평가한다.
기재부는 지원 대상국과 맺은 계약을 토대로 사안별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과거 지원 대상국과 맺은 차관계약을 환차손을 이유로 일괄 보전하는 것은 별도 예산이 없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환 헤지 보험상품 가입을 할 수 있고, 가입을 하지 않았더라도 당초 지원 대상국과 맺은 계약서에 ‘인건비·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경우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 이에 따라 건별 협의를 진행하는 게 맞다”라고 밝혔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