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계는 시장 규모가 14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기대되는 액화수소운반선 분야 기술 독립에 팔을 걷어붙였다.
현재 한국의 주력 선종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선 프랑스 기업 GTT가 화물창(저장탱크) 특허를 선점한 후 전 세계에서 기술 사용료를 받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도 이 회사에 매년 수천억원을 지급한다. 한국 조선 업계는 아직 국제 표준이 정립되지 않은 액화수소운반선 시장에서는 이런 기술 종속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수소 시장의 본격 개화와 함께 액화수소운반선 시장 규모는 2050년 140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국제수소에너지저널은 액화수소운반선 1척당 건조 비용이 최소 4억8000만 달러(약 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고, 한국선급에 따르면 2050년 수소 운반선 수요는 최소 200대다.
액화수소운반선의 핵심은 화물창을 초저온 상태로 유지하며 손실 없이 액화수소를 운반하는 것이다. 기체 상태의 수소는 부피가 너무 크다. 영하 253도에서 액화해 부피를 800분의 1로 줄여야 효율적 운송이 가능하다. 액화수소는 LNG 대비 증발률이 9배 이상 높아 해상 이동이 까다롭다.
한국 조선사들은 관련 문제 해결에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국제선급협회(IACS) 소속 4개 선급으로부터 ‘액화수소 탱크의 진공단열 기술에 대한 기본승인(AIP)’을 받았다고 밝혔다. 진공단열 기술이란 선박 운항 중 액화수소 탱크의 단열 공간을 진공 상태로 유지해 액화수소의 증발을 방지하는 기술이다. 이 회사는 용접 단계에서 수소 취성(수소로 인해 금속의 연성이 감소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 인증도 받았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9월 노르웨이 선급인 DNV로부터 8만㎥급 전기 추진 액화수소운반선에 대한 AIP를 획득했다. 한화오션 측은 “해당 인증을 바탕으로 16만㎥급 이상의 대형 액화수소운반선의 개발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도 지난 2021년 영국 선급 로이드에서 멤브레인형(얇은 철판을 보호막으로 사용) 액화수소 화물창과 16만㎥급 액화수소운반선 개념 설계에 대한 AIP를 받은 바 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부산대 수소선박기술센터는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액화수소운반선을 설계·건조해 해상 실증까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HD한국조선해양 등 대형 3사 모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업계 관계자는 10일 “수소는 탈탄소 시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에너지원”이라며 “액화수소운반선 분야 기술력 확보는 국가의 에너지 공급망 경쟁력 관점에서 포기할 수 없는 목표”라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