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 선행 지표로 통하는 D램 가격이 6개월째 답보 상태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부진으로 공급 업체들의 재고 수준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9월 급락 이후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저가 물량 공세를 펼치는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범용 메모리 시장의 공급 과잉과 점유율 경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당분간 메모리 다운사이클(침체기)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D램 매출 의존도가 큰 국내 반도체 업계의 상반기 실적에 먹구름이 꼈다.
10일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 1Gx8)의 지난달 31일 기준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달과 같은 1.35달러로 집계됐다. 이 제품의 가격은 지난해 7월(2.10달러)을 고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9월(-17.07%)과 11월(-20.59%)에는 두 자릿수로 급락한 뒤 12월부터 박스권에 갇혔다.
업계에서는 세계적인 수요 둔화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 출범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 증가로 D램 가격 하락세가 상반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D램 공급 업체들의 재고량은 최고치에 달했던 지난해 4분기 수준까지 높아졌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D램과 낸드플래시는 선주문 후제작 구조가 아니라 선제작 후판매 구조라 물량이 많을수록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메모리카드·USB용 낸드플래시 범용제품(128Gb 16Gx8 MLC)은 지난달 반짝 올랐다. 이 제품은 지난 8월을 고점으로 최근 4개월(9~12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다 반등했다. 지난해 2월 이후 11개월 만에 상승세를 보였지만 지난달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에 중국 공장의 직원들이 공장을 비우면서 거래가 중단되고 일시적으로 공급이 제한된 데 따른 가격 반등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은 D램·낸드플래시 등 범용 메모리의 매출 의존도가 높은 삼성전자 실적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열린 지난해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모바일, PC 수요가 여전히 약세라고 밝히며 “올해 1분기에는 D램 사업이 지난해 4분기보다 더 어려워 판매량이 예상보다 부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중국산 업체가 저가 물량 공세를 펼치며 D램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국내 업체에겐 불리한 요인이다.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의 지난해 12월 기준 D램 글로벌 생산 비중은 12%로 올해에는 15%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생산 비중이 각각 37%, 25%, 17% 수준인데 CXMT가 3위 마이크론의 턱밑까지 추격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CXMT가 점점 범용 메모리 시장의 파이를 크게 가져가면서 기존 업체들의 매출을 깎아 먹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