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담합과 행정지도

입력 2025-02-11 00:38

담합은 시장경제의 주적(主敵)이다. 경쟁이 사라진 시장에서 최대 피해자는 제값보다 비싸게 물건을 산 소비자이고, 그 과실은 담합 가담자가 독식하기 때문이다. 130년 전 미국에서 처음 공정거래법이 생겨난 것도 카르텔(담합)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공정거래법상 담합행위의 과징금 부과 비율은 관련 매출액 대비 최대 20%로 여러 불공정행위 중 가장 높다.

당사자들 사이에 은밀히 이뤄지는 담합은 주로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로 적발된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먼저 자수하는 가담자는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해 카르텔을 무너뜨리는 구조다. 대형 담합 사건 열에 아홉은 리니언시로 적발된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가 다음 달 초 과징금 부과 여부를 결정하는 이동통신 3사의 휴대폰 판매 장려금 담합 의혹 사건은 리니언시가 작동하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행정지도가 있다. 공정위는 이들 3사가 2015년부터 휴대전화 번호 이동 현황을 공유하며 판매장려금, 거래량 등을 짬짜미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통신사들은 방통위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실제 방통위는 판매장려금을 30만원 이상 주지 못하게 지도했고, 번호 이동 현황도 통신사들이 공유하도록 했다. 통신사로서는 방통위 지시를 따랐을 뿐인데 공정위에서 수조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행정지도란 행정기관이 특정인에게 일정한 행위를 지도·권고·조언하는 행위를 뜻한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인허가권을 가진 규제기관이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강제성이 있다. 행정지도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관치가 강한 한국과 일본에서만 행정 편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 경쟁 당국은 적극적인 조사와 제재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행정지도가 낀 담합 논란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심지어 공정위조차 지난해 말 배달 앱 수수료 인하 중재에 나서 대형 2개사 수수료 인하 결론을 도출했다. 이를 두고 통신 3사가 방통위 행정지도에 따라 판매장려금을 책정한 것은 담합이고, 자신들이 배달 앱 수수료를 낮춘 것은 담합 조장이 아닌 정상적인 행정지도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최근 행정지도로 야기된 담합에 대해 공정위가 과징금을 때려도 2심 법원은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잦다. 공정위는 ‘봐주기’ 판결이라고 반발하지만, 법원의 입장은 분명하다. 오리고기나 해상 운임 담합 등 주무 부처와 협의를 거쳐 가격을 결정한 것은 담합이 아닌 정상적인 합의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정당하게 과징금을 부과하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억울한 기업들은 법원 소송에 전력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행정지도에 따랐을 뿐인데 1년 동안 번 이익을 모두 과징금으로 내야 하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기업은 없다.

특히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담합 등 불공정행위 사건은 조세 불복보다 기업으로서 불리하다. 세무조사로 징벌적 세금을 부과받은 기업은 조세심판원과 법원 1·2·3심을 거치는 등 4번의 구제 절차가 있다. 반면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는 1심 판결 성격이 있으므로 기업들은 2·3심 2번의 기회뿐이다. 3심은 법률심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뒤집을 기회는 단 1번뿐이다.

행정지도는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 법에 기반을 둔 행정이 아니므로 투명성이 결여되고 법치주의에도 반한다. 공정위는 행정지도 논란이 낀 불공정행위 사건에 대해 ‘내 갈 길만 간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국가 경제나 공정사회 구현에 도움이 될지 고민해 볼 때다. 지금대로라면 이득을 보는 쪽은 과징금 불복 소송에서 거액의 수임료를 챙기는 대형 로펌들뿐이다.

이성규 산업1부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