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정국 속 교회도 예배 중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정치적 발언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뚜렷한 정치색을 가진 장로들이 주일예배 대표기도 때 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여과 없이 쏟아내면서 교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9일 서울 중구의 한 교회 예배에서 대표기도를 한 A장로는 정치 연설 같은 기도로 물의를 빚었다.
“애국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로 악한 미디어를 가려 주시고 거짓과 편파 방송을 하는 각 방송국 데스크들의 배후 세력이 사라지게 해 주옵소서. 대통령 탄핵 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순리대로 기각되고 교회에서 반공의 말씀 선포되게 해 주소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돕게 하시고 국제사법재판소가 일하게 도와주소서. 헌재의 판결 때 정말 많은 애국 시민이 거리 곳곳을 지키게 해 주소서.”
5분 가까이 이어진 그의 기도에 대해 일부 교인이 “아멘”으로 화답했지만, 본당 곳곳에서는 한숨과 함께 수군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부속 예배실에선 기도를 듣다 못해 소리를 지르고 예배당을 뛰쳐나간 교인이 있었을 정도였다.
이 교회 B집사는 1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주일예배 대표기도가 개인 한풀이 시간도 아니고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대표로 기도해야 하는 건데 긴 시간 실망스러웠다”면서 “그러지 않아도 교세가 줄어드는데 이 기도로 실족해 교회를 등지는 교우가 있을까 염려된다”고 꼬집었다.
대표기도를 하는 장로들의 기도문은 사전에 점검하는 게 쉽지 않다. 이 같은 ‘돌발 기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이유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를 목사들에게만 맡겨 ‘목회 기도’를 하도록 하는 교회도 있다. 목회 기도란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에 맞는 기도를 의미한다.
서울 광림교회(김정석 목사)는 80년대 초 고 김선도 목사가 담임목사일 때 한 장로가 당시 대통령을 ‘각하’로 칭하며 축복기도를 한 뒤 장로들의 대표기도를 중단했고 이후 주일예배엔 목회자만 대표기도를 하고 있다.
대표기도는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양’ ‘참회와 간구’로 구성된다. 기도의 목적이 나라와 사회 문제보다 예배에 맞춰져 있으므로 개인 신상이나 하소연, 정치적 언급은 엄격히 지양해야 한다.
이건영 인천제2교회 원로목사는 “대표기도란 회중을 대신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회중의 다양성을 반영해 한쪽으로 치우친 기도를 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면서 “예민한 시기인데 대표기도 하는 장로가 어떤 목적을 갖고 기도를 악용하는 건 공동체를 어지럽게 만들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종순 충신교회 원로목사도 국민일보 칼럼 ‘박종순 목사의 신앙상담’을 통해 이 부분을 수차례 언급했다.
박 목사는 “교회는 신앙공동체이지 정치집단이 아니므로 대표기도 때 개인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해 편을 가르면 절대 안 된다”면서 “대표기도는 회중을 대표하는 사람이 하는 기도로 개인 기도와는 반드시 구별돼야 하고 그날 예배를 위한 기도가 주된 내용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