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금 가격, 왜 치솟나

입력 2025-02-11 00:33

돌반지 가격이 한 돈(3.75g)에 6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해 약 27% 급등했던 금 가격은 올 들어 이미 약 9% 상승했다. 현재 온스당 2850달러 수준인 금 가격이 조만간 30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세계적으로 ‘골드러시’(19세기 상업적 가치가 있는 금이 발견된 지역에 노동자들이 대거 이주했던 현상)가 강화되고 있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지난해 금 거래량은 총 4974t으로 사상 최고치였고, 지난해 4분기에는 분기 최고 거래량을 기록했다. 금 가격이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 금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금 수요 급증에는 주요국 중앙은행도 한몫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량이 3년 연속 1000t을 넘어서는 등 중앙은행들마저 ‘골드러시’ 현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금 가격 급등 배경에는 글로벌 유동성 효과와 인플레이션 우려가 우선 지적된다.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주요국 중앙은행의 막대한 유동성 공급이 각종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고 이후 글로벌 경제에 확산된 인플레이션 현상이 금 수요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그러나 금 가격 상승의 또 다른 중요 원인은 불확실성 확대와 갈등 리스크가 아닌가 싶다. 금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이다. 세상이 불안하고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폭될 경우 사람들은 금을 매입하면서 위험에 대비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장기화와 더불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출범을 전후해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은 관세 등 각종 미국 우선주의 정책 강화로 연일 불확실성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 부과 조치가 막판에 한 달 유예됐지만 불씨가 남아 있는 상황이고, 중국에 대한 10% 추가 관세 조치는 이미 시행됐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EU)은 물론 주요 교역 상대국에 대해 언제든 보편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는 중이다. 전 세계 경제가 관세 폭풍 속으로 이미 진입한 것이다. 문제는 관세뿐만 아니라 집권 1기 당시보다 더욱 강력해진 트럼프 2기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다양한 갈등 현상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우선 미·중 무역 및 패권 갈등이 심화될 여지가 잠재해 있다. 트럼프 1기 당시 고율 관세 폭탄을 경험했던 중국은 이번 트럼프 2기 관세 부과에 호락호락하지 않을 공산이 높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 정책에 대해 수출 지역 다변화 등을 통해 대비책을 마련하면서 수세적 입장보다 공세적 맞불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애플, 엔비디아 등 중국 판매 비중이 높은 미국 빅테크 업체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글로벌 경제와 교역 사이클에 치명타를 가하면서 경제 불확실성이 더욱 확산될 것이다.

더욱이 압도적인 기술 우위로 혁신 사이클에서의 미국 중심 승자독식 게임은 중국의 인공지능(AI) 딥시크 출현으로 게임 양상이 크게 변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에 대한 강력한 추가 제재에 나설 것이 예상되지만 이것만으로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를 제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이고, 이 역시 불확실성 리스크를 높일 것이다. 이밖에 트럼프 2기 관세 정책 등 자국 우선주의 강화가 자칫 코로나19 당시 물가 압력을 높인 글로벌 공급망 차질을 재연시킬 수 있음도 불확실성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금 가격 급등이 앞으로 벌어질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 내 불확실성 확대를 예고하는 시그널일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