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경영권을 둘러싼 다툼이 있는 경우 공격과 방어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 양쪽 회사 주주의 부가 모두 감소될 우려가 있다. 경영권을 인수하려는 쪽이나 현재 경영권을 쥐고 있는 쪽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큰 출혈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경영권 이전을 통한 자원 재분배보다 자원 파괴라는 심각한 사회적·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1997년 신동방그룹의 미도파백화점에 대한 공개매수에서 공격과 방어를 합쳐 2000억원대의 막대한 자금이 사용되는 바람에 양측 모두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 미도파백화점은 방어 비용으로 자산을 과도하게 소진해 부도 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결국에는 이 백화점이 속했던 대농그룹이 공중분해됐다. 신동방그룹은 공개매수가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주력 계열사인 증권사를 팔아치워야 했으며 1999년에는 이 그룹에 소속된 4개사가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미국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1990년 텍사스의 억만장자 해럴드 시몬스는 군용 항공기 제조사인 록히드를 상대로 이사회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위임장 대결을 벌였다. 시몬스는 록히드의 주식을 일정량 매입한 후 이사들을 갈아치우기 위해 600만 달러를 추가 투입했지만 결국 실패해 무려 1억 달러의 손실을 안고 그간 매입한 주식을 팔아치웠다. 록히드는 여러 기관투자가를 끌어들이고 800만 달러를 투입해 경영권을 성공적으로 방어했지만 결국 기관투자가들에게 4명의 이사를 선임할 권리를 내줬다.
지난달 23일 고려아연은 임시주주총회에서 수성에 성공했다. 상법이 인정하고 있는 비모자회사(非母子會社) 사이의 주식 상호 보유를 통해 당초 원하는 것을 모두 달성했다.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고려아연은 주주총회 다음날 뜻밖에 MBK파트너스 쪽에 대타협을 제안하면서 장기적인 소모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소통과 대화를 도모하기 위해 이사회를 MBK에 전향적으로 개방할 수 있다”고 하면서 MBK가 원한다면 경영 참여의 길도 열어놓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 고려아연에 이사회의 독립성과 견제 기능, 다양성 강화를 위해 노력하라고 권고한 것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는 지난해 말 벌어진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여파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인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세계 최고의 제련 기술력을 보유한 고려아연이라 하더라도 경쟁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게다가 MBK와의 경영권 분쟁이 해를 넘기면서 고려아연의 많은 구성원이 가중된 피로와 심각한 스트레스로 인해 고용 불안을 느끼고 이직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비철금속 세계 1위를 일궈낸 핵심 인력들이 이탈한다면 고려아연 경영권을 가져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처럼 과열된 경영권 분쟁에서는 설사 어느 한쪽이 승리하더라도 기업 가치가 떨어져 기대한 만큼 효과를 얻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국민, 정치권, 지역사회가 이 경영권 분쟁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사모펀드인 MBK가 국가 기간산업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고려아연을 해외에 매각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임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MBK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좋은 방안은 고려아연의 대타협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려아연이나 MBK 모두 과거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승자의 저주를 두려워한다면 다소 늦었지만 이제는 상생의 길을 모색하라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주문하고 싶은 게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권재열(경희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