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이 힘이다.”
법정에서 매서운 호통으로 소년들을 떨게 만들어 ‘호통 판사’로 알려진 부산지방법원 천종호(64) 부장판사의 평생 좌우명이다. 그는 “나는 IQ가 높거나 특별한 재능도 없었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며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면 계속된 힘을 믿고 하나님의 때를 기대하라”고 조언했다.
최근 부산지방법원에서 천 판사를 만났다. 그는 2018년 소년부를 떠났지만 여전히 2016년 설립한 사단법인 ‘만사소년’(자나깨나 소년들 생각만 한다는 뜻) 산하의 ‘청소년회복센터’와 ‘만사FC 축구단’을 통해 방임과 학대, 가난에 내몰린 비행 소년들을 치유하고 돕고 있다. 이들이 결국 우리 사회의 미래 청년이 되기 때문이다.
천 판사는 ‘소년범들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가 ‘천 파더’가 된 것은 가난 속에서 보낸 청소년 시절이 비행 소년들의 현실과 닮았기 때문이다.
천 판사는 가난한 달동네 부산의 서구 아미동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홉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며 극심한 가난을 겪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육성회비 500원을 못 내 쫓겨났고, 일용직 아버지가 일하지 못하는 장마철과 겨울엔 끼니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삐뚤어질 용기도 없었고 의지할 곳은 공부와 하나님뿐이었습니다. 아홉 식구가 사는 단칸방이 비좁아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기도하며 공부했습니다. 고3 때 원서비조차 없어 친구 도움을 받아 부산대 법대에 원서를 냈었죠.”
대학 3학년 때 군에 입대한 그는 심부정맥과 폐결핵으로 1년 만에 의가사 제대했다. 가난과 병이 그의 삶을 흔들었다. 6개월 방황 끝에 다시 공부를 결심했다. 그리고 다섯 번의 실패를 딛고 여섯 번째 도전 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2010년 2월 창원지방법원에서 소년재판을 맡게 된 그는 죄는 엄격히 판결하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소년들의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하며 돕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나와 비행 소년들의 차이는 한 끗 차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천 판사는 자신에겐 하나님이 계셨고, 가족의 울타리가 있었기에 꿈을 갖고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년들도 누군가의 사랑과 보호를 느낀다면 죄를 짓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8년 동안 그의 법정을 거쳐 간 소년들만 1만 2000명에 달한다. 위기의 소년들도 성장해 이제 청년이 되었을 터. 지금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는 “우리나라는 장기적인 추적, 관찰이 없어 이들에 대한 통계도 없다”며 “어쩌면 무소식이 희소식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과거가 드러나는 걸 꺼립니다. 과거 재판했던 한 여학생이 결혼했는데 초대는커녕 축하 화환도 거절당했습니다. 일반 청년들도 취업이 어려운 시대, 이들은 더 큰 위기 속에 놓여 있습니다. 청년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대한민국에서 버텨내는 것조차 다행인 현실입니다. 청년이 됐을 아이들이 절망 속에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길 바랍니다.”
천 판사는 “미래 우리 사회의 청년이 될 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용서와 관용의 시선”이라고 말했다.
“교회도 사회도 보호소년들의 아픔엔 공감하지만 정작 손을 내미는 것은 주저합니다. 아이들은 편견과 혐오 속에 더욱 소외돼 교회의 문턱조차 넘기 어렵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된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교회가 문턱을 낮추고 사랑으로 품는다면 이들도 예수님의 제자로 거듭나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그는 세 남매의 아버지다. 바쁘게 뛰어다니며 소년들을 돕는 사이 두 자녀는 장성해 사회인이 됐다. 지난해 청년의 때 힘든 시기를 겪고 취업에 성공한 둘째 딸을 보며 “청년들의 아픔을 더욱 실감했다”고 전했다.
“이 시대 청년들은 끝없는 경쟁 속에서 혹사당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사회가 먼저 바뀌지 않으면 더 많은 청년이 좌절할 것입니다. 아이들을 몰아붙이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 기다려 주고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요.”
천 판사는 사랑하는 소년들과 청년들을 향해 이렇게 조언했다.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면 ‘계속된 힘’으로 끝까지 인내하세요. 인생에 작은 변화가 찾아올 것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천종호 판사가 추천한 다음 인터뷰이 IJM코리아 민준호 대표
전 세계 현대판 노예 5천만명
갇힌자 ‘구출’해 치유자로
전 세계 현대판 노예 5천만명
갇힌자 ‘구출’해 치유자로
천종호 부장판사가 추천한 다음 인터뷰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폭력과 착취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IJM코리아 민준호 대표이다. 천 판사는 "민 대표가 속한 IJM코리아는 개발도상국 내 폭력과 인신매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글로벌 기독교 NGO단체"라고 소개했다.
그는 "민 대표가 만사소년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IJM 미국 법무부 소속 변호사이자 설립자인 게리 하우겐의 저서 '약탈자들'을 보내줬다. 소년들은 이 책을 통해 '현대판 노예' 문제를 배우는 계기가 됐으며 일부 소년들은 과거 자신이 힘없는 아이들을 착취했던 가해자였음을 깨닫고 깊이 반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 대표는 만사소년 사역에 큰 힘이 돼주는 소중한 동역자"라고 덧붙였다.
IJM은 전 세계 17개국에서 29개의 사무국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약 8만여명의 사람들을 현대판 노예와 폭력에서 구출해 냈다. IJM코리아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하는 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해당 지역의 지부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이들의 활동을 위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부산=글·사진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