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고래’로 알려진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의 첫 탐사 시추가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정부의 ‘깜짝 발표’ 이후 사업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격화하고 있다. 야당은 탄핵 국면에서 윤석열정부에 의한 사기극으로 폄하하고, 여당은 문재인정부 때 시작한 사업이라며 책임을 돌리려는 모습까지 보인다. 전문가들은 자원개발 사업이 정치 논리가 아닌 경제 논리에 따라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6일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1차) 시추를 통해 잠정적인 가스 징후를 확인했지만 그 규모가 경제성을 확보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지난 1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1차 시추 결과에 대한 객관적 중간보고를 5월쯤 하려고 한다고 한 것과 달리 1차 시추를 마치자마자 결과를 언급한 것이다.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정치권의 공방이 격화됐다. 야당은 프로젝트를 사기극이라 규정하고 맹공에 나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할 최고급 GPU(그래픽처리장치)를 3000장 살 수 있는 돈을 ‘대왕 사기 시추’ 한 번에 다 털어 넣었다”고 질타했다.
국민의힘도 민주당이 ‘발목 잡기’에만 힘쓰고 있다고 반박했다. 박민영 대변인은 9일 논평에서 “민주당은 대한민국이 절대 산유국이 돼서는 안 된다는 뒤틀린 인식 아래 대왕고래가 끝내 좌초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지난 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대왕고래 개발은 문재인정부 때 계획을 수립해 시추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와 석유공사가 뒤늦은 수습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안 장관은 7일 한 방송서 “가스가 여기(대왕고래)에는 없지만 나머지 6개 유망구조 부근에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며 “후속 탐사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석유공사도 8일 해명 자료에서 “한 번의 시추 결과로 경제성이 있는 석유·가스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번 주 시작하는 2월 임시국회에서도 관련 질의가 예고되는 등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자원개발 사업 발표 당시부터 ‘정무적 판단’ 개입 의혹을 자초하더니 이번엔 탄핵 국면에 다시 정치 논리에 따라 프로젝트가 손바닥처럼 뒤집힐 상황에 놓였다고 비판한다. 장기적 안목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는 사업이 정치 논리에 휩쓸리면서 추진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21년 11%에 그치는 등 자원개발률이 저조한 상황에서 이를 끌어올리기 위해선 과거 이명박정부 이후의 급격한 노선 변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정치권에서 매번 잘잘못을 따지려 들면 자원개발 실무는 진행할 수가 없다”면서 “과거 동해 가스전을 11번째에 뚫었던 것처럼 보다 긴 호흡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시추를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