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따른 국가부채 확대가 한국의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경고가 나왔다. 정부와 정치권은 내수부진 완화를 위해 추가재정 투입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지만, 시점과 방식을 둘러싼 여야 간 ‘추경 신경전’에 여·야·정 국정협의체가 표류를 거듭하면서 ‘벚꽃 추경’에 대한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9일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낸 올해 한국 신용등급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추경이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한국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8.4%로 지난해(47.3%)보다 소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중장기적으로는 “오는 2029년까지 GDP 대비 약 52%로 완만하게 증가할 것”이라며 “부채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경우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회 야당이 ‘확장재정론’을 지지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다만 피치는 올해 한국 대선 시기를 2분기 말로 예상하면서도 “중기적 재정 경로가 대선 결과에 따라 좌우돼 명확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피치의 이 같은 진단은 추경을 적자국채 발행에 기대야 하는 국내 재정 운용 상황과 무관치 않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2006년 10월 국가재정법 제정 이후 이뤄진 역대 16회 추경 중 9회가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조달했다. 올해는 재정여건이 더욱 좋지 않다. 2023년 약 56조원, 지난해 약 30조원에 달하는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정부의 재정 여력이 크게 부족해졌다.
여야 정치권은 경제회복을 위해 추가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점 방식을 둘러싼 의견차로 국정협의체가 공전을 거듭해 ‘추경 무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상 추경은 정부 편성, 국회 심사 등을 거쳐 2개월이 소요된다. 이달 중 추경 편성 논의가 이뤄져야 늦어도 4월 초 추경이 가능하다. 여기에 다음 주 초로 예상됐던 국정협의체 회담도 국민의힘이 추가 실무협의를 이유로 회담 연기를 요청해 다시 불투명해진 상태다. 향후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안 심판 결과에 따라 추경 논의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신속한 협의를 촉구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최근 반도체특별법 도입과 추가 재정 투입 등이 국회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지금 곧바로 시작해도 우리와 경쟁하는 주요국을 따라잡고 민생을 살리기 충분치 않다”며 정치권의 조속한 협의를 강조했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