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북한 비핵화’ 원칙에 김정은 “핵은 실전용” 맞불… 주도권 신경전

입력 2025-02-09 19:16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조선인민군창건(건군절) 77주년을 맞아 국방성을 축하 방문하고 장병들을 격려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은 실전용”이라며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핵 무력 강화 방침도 재차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완전한 비핵화’를 대북 정책 원칙으로 다시 천명하자 즉각 반발에 나선 것이다. 북·미가 진짜 속내는 숨기며 ‘주도권 잡기’를 위한 신경전을 본격화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전날 인민군 창건 77주년을 맞아 국방성을 방문한 자리에서 핵 역량 강화를 위한 새로운 계획 사업을 언급하고 핵 무력 고도화 방침을 천명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다만 새로운 계획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미·일·한 3자 군사 동맹체제와 그를 기축으로 하는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형성은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군사적 불균형을 초래하고 새로운 격돌 구도를 만드는 근본 요인”이라며 “새 전쟁 발발을 막고 군사적 균형 보장을 위한 지속적인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제 분쟁의 배후는 미국이라고 지적하며 “한계 없는 방위력 건설을 지향하는 우리 노선이 가장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전날에도 “우리의 핵은 그 누구의 ‘인정’이나 받기 위한 ‘광고물’이 아니며 몇 푼의 돈으로 맞바꿀 ‘흥정물’은 더욱 아니다”며 “적대세력들의 그 어떤 침략 기도도 원점부터 신속하게 도려내기 위한 불변의 실전용”이라고 피력했다.

북한의 연이은 대외 메시지는 지난 7일(현지시간)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완전한 비핵화 원칙이 명시된 것에 대한 반발 차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며 북한과의 대화 재개 의지도 드러냈었다. 이에 북한이 핵 자강론으로 강하게 대응하며 트럼프 떠보기에 나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직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한반도 정책 등이 구체화하지 않은 단계에서 섣부르게 대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대미 메시지 수위를 조절하며 향후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한·미·일 3국 군사협력과 아시아판 나토 등을 거론하며 핵 개발 의지를 드러낸 것은 일종의 협상 가이드라인 성격이 있다는 취지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적대적이며 모험적인 행위는 바라지 않은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라며 미국 주도의 핵 모의훈련을 비난하는 논평도 냈다. 대화를 제의하려면 미국 측이 먼저 성의를 보여야 하고, 협상 의제는 비핵화가 아닌 군축이어야 한다는 조건 제시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이다.

김 위원장은 “주권과 안전, 영토 완정을 수호하기 위한 러시아 군대와 인민의 정의의 위업을 변함없이 지지 성원할 것”이라며 북한군 추가 파병 가능성도 시사했다. 다만 북한 성명에는 미국에 대한 비난과는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언급은 등장하지 않았다.

박민지 이택현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