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세탁기 관세 효과

입력 2025-02-10 00:4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미국 세탁기 업체 월풀의 청원을 받아들여 수입산 세탁기에 최고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다. 창립 역사가 100년이 넘는 월풀의 당시 시장 점유율은 38%로 여전히 1위였지만 삼성전자(16%)와 LG전자(13%) 등 한국 기업들의 추격이 무서웠다. 세이프가드 발동 이듬해 한국의 세탁기 수출액은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후 삼성과 LG는 세탁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현지화와 혁신 전략을 채택했다. 미국 현지에 공장을 신설한 두 회사는 혁신 경쟁을 벌이면서 첨단 기능을 갖춘 제품들을 개발했다. 빨래 무게를 감지해 세제량과 세탁 시간을 조절하는가 하면 세탁물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옷감 재질에 따라 모터 속도를 조절했다. 지난해에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하나로 합친 일체형 세탁건조기를 출시하기도 했다. 인건비 상승은 공장 자동화로 극복했다. LG전자 테네시 공장의 경우 자동화율이 70%에 육박한다. 연간 세탁기 120만대, 건조기 60만대를 생산하는 이 공장에 근무하는 인력은 900여명에 불과하다.

미국 소비자들의 만족도는 크게 향상됐다. 컨슈머리포트지가 선정한 ‘올해의 최고 대용량 세탁기’ 조사에서 세탁 방식에 따른 3개 부문별 1~3위를 모두 LG와 삼성이 차지했다. 시장 점유율은 세이프가드 이전보다 올랐다. 시장 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세탁기 시장 점유율은 LG전자가 21.3%로 1위, 삼성전자가 20.4%로 2위를 각각 차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관세 정책의 성공 사례로 세탁기를 들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서 일자리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혁신 경쟁에서 뒤처진 월풀의 시장 지배력은 지켜주지 못했다. 트럼프 관세 정책이 또다시 위기로 다가오겠지만 한국 기업들의 대응전략과 역량에 따라서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전석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