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패션업계는 급변하는 날씨와 시장 흐름 속에서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폭설과 한파로 아우터 판매가 치솟았지만, 이상기후로 늦게 찾아온 겨울 탓에 재고 부담은 여전히 크다. 장기화한 내수 침체에 더해 트럼프 재집권으로 강달러와 관세 부담까지 더해져 해외 시장 개척도 난항을 겪고 있다. 겹악재 속 패션업계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9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강추위가 지속되며 패딩·아우터 등 방한 제품 매출이 반짝 급증했다. 롯데백화점의 럭셔리 패딩 매출은 전년 대비 80%, 신세계백화점 프리미엄 아우터 매출은 65.7% 늘었다. 현대백화점 아웃도어 브랜드 매출은 22% 증가했다. 온라인 플랫폼 W컨셉은 폭설 영향으로 패딩부츠·어그 등 방한슈즈 매출이 1155%나 급증했다. 무신사에서도 패딩·헤비아우터 거래액이 81% 증가했다.
이에 패션업계는 겨울 시즌 막바지 재고 정리에 나섰다. 롯데백화점은 ‘해외패션 시즌오프’ 행사를 진행하고, 롯데아울렛과 현대백화점도 최대 60% 할인 프로모션을 통해 재고 소진을 서두르고 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통상 8월에 진행하는 아울렛 겨울 할인 행사를 올해 6개월 앞당겼다”며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가 잦아져 적정 생산량 조절이 힘든 상황”이라 설명했다. 일부 업체들은 악성 재고 소각을 검토하거나 장기 보관 비용을 감수하며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고물가 장기화로 소비 자체가 위축되면서 패션업계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의 지난해 매출은 2조40억원으로 2.3% 줄었고, 영업이익은 1700억원으로 12.4% 감소했다.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한 신세계백화점과는 달리 패션 계열사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매출액은 3.4%, 영업이익은 44.9% 감소했다.
혼용률 조작과 가품 판매 논란도 패션업계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무신사는 일부 브랜드가 덕다운(오리털) 패딩의 혼용률을 속여 판매한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랜드의 SPA 브랜드 후아유는 논란이 된 제품을 전량 회수하고 환불 조치를 진행 중이다. W컨셉과 지그재그 등 온라인 플랫폼도 입점 업체 관리 강화를 선언했다. 백화점 업계 역시 대응에 나섰다. 롯데백화점과 롯데아울렛은 입점 브랜드에 혼용률 시험 통과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내부 검수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관세전쟁’에 수출 전망도 불투명하다. 국내 OEM 업체들의 생산기지가 있는 베트남과 과테말라 등은 미국 정부의 새로운 관세 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 꼽힌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서도 패션업계의 글로벌 시장 공략은 계속되고 있다.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는 지난 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한 서울패션위크에서 “K패션이 K열풍의 다음 주자가 돼야 한다”며 해외 진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LF는 1조원 브랜드 ‘헤지스’를 앞세워 인도, 중동, 유럽 등 신규 시장 개척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