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미국 플로리다 폰테베드라비치의 TPC 소우그래스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내 집 안마당에서 펼치는 잔치’라고 할 수 있다. 관람권 판매 등을 비롯한 각종 수익 사업을 통해 자선기금을 모으고 선수 이름으로 지역사회에 기부하며 끈끈한 정을 나누는 자리이기도 하다. 선수들이 꼭 우승하고 싶어하는 대회인 이유이다.
이 대회 우승은 절대 쉽지 않다. 우승은커녕 ‘마의 홀’로 불리는 파3의 17번 홀을 무사히 넘기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2011년 대회 전까지 해당 홀에서 버디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대회를 앞두고 캐디인 앤디 프로저에게 “컷 통과만 합시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2라운드를 25위, 3라운드를 5위로 마쳤다. 프로저는 “우승도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속으로 ‘우승은 무슨, 여기가 얼마나 어려운 곳인지 모르나’하고 웃어넘겼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나는 우승 경쟁을 하고 있었다. 상대는 작지만 단단한 사나이, 데이비드 톰스였다. 선두 조가 무너지는 사이 공동 3위였던 톰스와 5위였던 내가 선두 자리를 두고 각축전을 펼쳤다. 15번 홀까지 내가 1타 뒤진 상황이었는데 16번 홀 티샷을 마친 뒤 보니 내 공은 러프에, 톰스의 공은 페어웨이에 떨어졌다. 코스가 워낙 까다로우니 러프에 떨어지면 페어웨이보다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아, 우승은 물 건너갔구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본 프로저가 입을 뗐다. “KJ, 긍정적으로 생각해. 남은 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라.”
그 순간 톰스가 우드를 들고 두 번째 샷을 하려는 게 보였다. 그린에 바로 공을 올리려는 전략이었는데 거리와 그린 주변을 고려했을 때 무리한 시도 같았다. 공은 물에 들어가 버렸고 톰스는 그 홀에서 보기를 했다. 나와 그가 공동 선두를 이루게 된 것이다.
나는 ‘마의 홀’로 불리는 17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 1타차 단독 선두로 나섰지만, 톰스가 18번 홀에서 10야드(9m)나 되는 긴 버디 퍼트에 성공해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 첫 번째 홀인 17번 홀에서 티샷을 홀에서 12m가량 떨어진 곳에 보낸 뒤 첫 번째 퍼트를 홀 약 1m 옆에 붙였다. 무난하게 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톰스도 나와 비슷한 거리에 볼을 가져다 놨지만 볼은 야속하게 홀을 돌아 나왔다. 이제 내 차례다. 우승 퍼트만 남았다. 침착하게 공을 굴렸다.
‘쨍그랑.’ 우승이었다. 볼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프로저와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우승 가뭄을 3년 만에 날려버렸다. 매니저는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면서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꿈만 같아 하늘을 올려다 봤다. “하나님, 제 기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대회는 PGA 투어가 선정한 2011년 시즌 가장 힘들었던 우승으로 꼽힌 12개 대회에 들어갔다. 내 세계랭킹도 15위로 19계단이나 상승했다. 한국 선수는 물론 아시아 선수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순위였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