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행복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건강이다. 건강한 노인이란 질병에 걸리지 않는 상태를 넘어 일상을 스스로 꾸릴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 역량을 가진 상태를 말한다. 특히 일상생활동작(ADL) 능력은 노인의 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다. 식사나 목욕, 옷 입기와 화장실 사용 등의 기본 활동이 가능한 노인은 자존감을 유지하며 가족과 사회 속에서 긍정적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노인의 일상 활동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는 ‘노쇠’다. 노쇠는 나이 들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상태가 아니다. 건강 관리와 생활 습관 부재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며 회복력이 감소하는 것을 뜻한다.
노쇠는 신체적·인지적·사회적 영역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를 방치하면 더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근감소증이 심화하면 낙상의 위험이 증가하는데 이로 인해 골절 등의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이는 노인의 독립적인 생활 능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신체적 노쇠는 근감소증과 체중 감소, 피로감과 보행 속도 저하, 신체 활동 감소로 드러난다. 집 청소나 짧은 산책조차 버거워지는 경우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근육과 골격이 더 약화되며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 인지적 노쇠는 기억력과 인지 능력 저하로, 일상적 의사결정조차 어렵게 한다. 약 복용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단순한 계산조차 어려워지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사회적 노쇠는 고립감과 관계 단절로 이어져 정서적 우울을 유발한다.
복합적으로 얽힌 다양한 형태의 노쇠는 노년 삶의 질을 저하하므로 초기 단계인 ‘전노쇠’(Pre-frailty)에서 이를 인지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전노쇠 상태는 회복 가능성이 큰 단계로 적절한 개입을 통해 노쇠 진행을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가족과 의료진의 적극적인 관심과 조기 발견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 65세 이상 노인의 약 40%가 전노쇠 상태다. 10%는 이미 노쇠 상태로 진입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곧 절반에 가까운 노인이 일상생활 능력 상실 위험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노쇠는 불가피한 노화의 일부가 아니다. 이를 예방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선 신체적·인지적·사회적 측면을 모두 고려한 다각적 접근이 필요하다. 일본은 노쇠 예방을 위해 지역사회 기반의 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 2~3회 진행하는 ‘코그니사이즈(Cognicise) 프로그램’은 신체 운동과 인지 활동을 결합한 개념이다. 이 프로그램으로 노인의 보행 속도와 기억력을 동시에 개선한 사례가 적잖다. 덴마크에선 근감소증 예방을 위해 단백질 섭취를 강조하는 동시에 저소득층 노인에겐 단백질 보충제를 지원하는 정부 주도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육류나 콩류, 유제품 섭취로 얻어지는 단백질은 노쇠 예방의 핵심 영양소다.
국내에서도 노쇠 예방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백세운동교실’은 전국 노인을 대상으로 근력 강화와 유연성 증진, 심폐 기능 개선을 위한 맞춤형 운동을 제공한다. 전라남도 강진군의 ‘노인들을 위한 건강 증진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이 함께 운동하고 영양 관리를 실천하며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요즘엔 몸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개인 맞춤형 건강 관리도 점차 확산하고 있다.
일상에서 노쇠를 예방할 수 있는 실천엔 무엇이 있을까. 가장 중요한 건 지속적인 신체 활동과 균형 잡힌 영양 섭취다. 근육량 유지를 위해 단백질 섭취를 늘리고 걷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을 규칙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동시에 취미와 자원봉사 등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며 정서적 고립을 방지하는 게 중요하다.
노쇠는 우리 모두가 맞닥뜨릴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예방과 관리가 가능한 영역이기도 하다. 건강한 노년에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의 노력도 필요하다. 지역사회와 국가의 지원, 각자의 노력으로 노년 건강을 지키는 길이 열릴 것이다. 자기 건강을 돌보는 건 하나님이 준 삶을 감사히 여기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