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취임식 연설에서 후일 자신이 평화와 통합을 만든 사람으로 자랑스럽게 기억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취임한 지 20일 남짓 동안 그는 일련의 파격적 조치로 벌써 세계를 벌집 쑤시듯 흔들고 있다.
먼저 파나마 운하를 미국이 다시 가져오고,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만들겠다는 말 한마디로 파나마와 덴마크에서는 갑작스레 트럼프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찾아야 했다. 이어 지난 1일 트럼프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중국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다만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를 한 달간 유예했는데, 두 나라는 대신 각각 펜타닐의 미국 유입과 불법이민 감독 조치 강화를 약속해야 했다.
더 큰 파장은 지난 4일 트럼프가 가자지구에서 200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요르단과 이집트 등으로 소개하고 그곳을 미국이 차지해 ‘중동의 리비에라’로 만들겠다고 언급하면서 불거졌다. 아랍 세계는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요르단과 이집트를 군사·경제 원조를 지렛대 삼아 회유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미국은 요르단에 매년 14억5000만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는데,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대외원조 집행을 전면 동결한 상태다.
트럼프는 원조 동결과 동시에 대외원조 집행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해체하려 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을 국제기구로부터 탈퇴하는 조치도 잇따르고 있다. 취임 직후 세계보건기구(WHO)와 파리기후협약에서 재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지난주에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도 탈퇴했다. 심지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대한 제재를 명령했다.
이처럼 트럼프는 우리에게 익숙한 자유주의적 질서와 평화를 여러 측면에서 훼손하고 있다. 영토주권 존중이라는 기본적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국제기구를 경시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자유무역과 인도주의 원칙에 반하는 조치가 거리낌 없이 취해진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피스메이커 포부는 허언에 불과한가. 이와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물밑에서 추진되는 트럼프의 계획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지난달 23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화상 연설에서 ‘킬링필드’가 된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는 의지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중국의 협조도 기대한다고 했고, 국제유가를 낮춰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더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핵무기 감축은 국제 평화와 안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러시아 및 중국과의 핵 군축 회담을 다시 추진하겠다고도 밝혔다.
최근 러시아 두마 외교위원장의 발언을 인용하며 미·러 정상회담 준비가 상당히 진척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회담은 우크라이나 전쟁 및 핵 군축 문제를 포함하여 미·러 관계의 전반적 재정립을 다룰 것으로 전망된다. 다보스포럼 연설이 시사하듯 트럼프는 중국과의 거래에 관해서도 관심이 큰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가 애초 공언했던 60% 대신 10%에 그쳤고, 중국 정부의 데이터 수집 위험 때문에 국제적 논란이 된 틱톡이나 딥시크에 대한 트럼프의 반응도 그리 강경하지 않았던 이유로 짐작된다.
트럼프의 평화 계획이 실현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힘에 의한 평화가 강대국 간 협상과 거래에 주로 의거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한국의 운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 내 동향뿐 아니라 더 넓은 강대국 정치의 향방에 촉각을 세우며 깊고 넓은 외교를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