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 관세전쟁에서 첫 번째 대결 상대는 뜻밖에 콜롬비아였다. 트럼프는 취임 엿새 만인 지난달 26일 오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콜롬비아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선언했고 9시간여 만에 백악관 성명을 통해 철회했다. 지난 4일 대중국 관세율을 10% 추가하고,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30일 유예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다.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미국의 불법체류자 추방 방식에 동의하지 않은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의 저항이었다. 페트로는 그날 미국에서 추방된 자국 출신 불법체류자를 태우고 수도 보고타로 날아오던 미군 항공기 2대의 착륙을 불허했다. 미국에서 테러범을 호송하듯 불법체류자들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운 사진이 공개됐는데, 이는 중남미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페트로가 국가원수 권한을 행사하면서까지 저항한 배경에는 불법체류자라도 콜롬비아인의 존엄성을 존중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참모들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자마자 콜롬비아에 고율관세를 부과하고 각종 제재를 집행토록 지시했다. 그는 트루스소셜에 이렇게 적었다. “콜롬비아 국민에게 인기가 없는 사회주의자 대통령 페트로는 항공기 착륙을 거부해 미국의 국가안보와 공공안전을 위협했다. 나는 우리 행정부에 긴급하고 단호한 조치를 지시했다. 콜롬비아에 25% 관세를 즉시 부과하고 일주일 안에 50%로 상향하겠다. 콜롬비아 정부 인사·가족·지지자에 대한 비자 발급 제한, 입국자·화물 세관 검사 강화, 미국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에 의거한 금융 제재를 시행하겠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 글은 백악관 성명이나 국무부 보도자료가 나오기 전에 올라왔다.
콜롬비아는 트럼프의 관세 대상국으로 지목되지 않았던 국가다. 미 상무부의 2024년도 무역수지 통계에서 대미 흑자를 내는 상위 19개국에 포함되지 않아 트럼프의 ‘청구서’를 받을 일은 없었다. 콜롬비아는 또 중남미에서 드물게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은 국가이기도 하다. 한때 6만명 넘는 미군이 콜롬비아에 주둔하며 마약 조직 소탕 작전을 공동으로 펼쳤다.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의 일원으로 파병한 중남미 국가는 콜롬비아가 유일했다. 콜롬비아에서 3년 전까지 좌파 정권이 들어선 적도 없다. 2022년 대선에서 집권한 페트로는 콜롬비아 사상 최초의 좌파 성향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이런 나라를 상대로 트럼프는 ‘관세 폭탄’을 던지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매년 수출에서 4분의 1을 미국에 의존하는 콜롬비아는 25% 관세율을 버틸 수 없었고, 페트로는 ‘백기’를 들었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콜롬비아 정부가 불법체류자의 무제한적 수용을 포함해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요구에 동의했다. 관세 및 제재 초안은 보류됐고 서명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페트로의 항복을 받아낸 집권 2기 첫 번째 관세 전쟁은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해줬다. 트럼프는 돌발 상황에서 내각과 조율하지 않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협상 카드조차 없는 상대라면 동맹국에도 예외 없이 관세 폭탄을 투척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동맹국 콜롬비아와 관세 대결을 펼칠 때 상황실 회의도, 갈등 완화를 위한 (상대국과의) 조용한 전화도 없었다. 그저 위협과 반격, 항복 그리고 향후 관세 전쟁에 대한 암시만이 존재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이번 주 주요 무역국에 대한 ‘상호 관세’를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한국도 표적이 됐을 텐데 트럼프를 설득해야 할 대통령은 자초한 재판에서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김철오 국제부 차장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