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권력 구조를 개편해야 합니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 속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헌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역대 최대 정부예산 확보, 33조원 기업투자유치, 산림자원연구소 이전 등 충남도의 수장으로 2년 반가량 도정 발전에만 전념했지만 최근 벌어지는 국정 혼란을 마주하자니 정치인으로서의 고심이 큰 듯 보였다.
김 지사는 지난 6일 충남도청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정치권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고 정치는 실종됐다”며 “이럴 때 일수록 여야가 개헌 논의를 포함한 정치 질서 회복 방안을 마련하고 체계적인 로드맵을 갖고 가야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이 바로 개헌의 적기”라며 “여야는 정치 복원에 힘을 모으고 새로운 정치 체제로 전환하는 로드맵을 국민들게 제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담=모규엽 사회2부장
-현직 대통령이 내란 혐의로 구속기소되고 탄핵 심판도 진행되면서 국가가 혼란스럽다.
“정치가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고 나라를 안정시켜야 하는데 진영논리와 무법, 무질서가 판을 치는 현 상황이 개탄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이 헌재에서 인용되든 기각되든 어느 쪽도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정국 혼란이 장기화될수록 경제를 비롯한 국가 전반에 미치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즉 승자독식의 현행 권력시스템으로는 지금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권력 구조를 개편하고 지방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지방분권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탄핵 심판 결론이 나오면 혼란이 줄어들겠는가.
“탄핵 소추안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사회적, 정치적 혼란이 해결되리라 보지 않는다. 헌법재판관들이 이념적으로 기울어져 공정하게 판결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그 결정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해방 이후 좌익과 우익이 싸울 때보다도 더 극렬하게 진영 간 갈등이 심화돼 있는 상황이다. 문형배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은 차치하더라도 정계선 헌법재판관의 남편 문제 등을 정리하지 않고 가면 안된다. 이번엔 박근혜 탄핵 때와 다른 게 보수와 진보가 팽팽하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려면 자기 주장만 하지 않고 협의하는 정치가 복원 돼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탄핵 소추안이 인용돼 조기 대선을 치른다면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후보가 이재명 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면 승복할 수 있겠나. 보수 진영의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민주당에서 승복을 과연 할까. 어느쪽이든 승복하지 않을 것 같아서 우려스럽다.”
-지금이 개헌 적기라고 보는 이유는.
“새로운 규칙에 의해 다음 정부를 수립해 질서를 회복하지 않고 기존 시스템으로 로드맵을 제시하고 추진하면 그 결과에 국민들이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갈등이 장기화되면 국가 신인도 하락 등 경제가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국민이 화합할 수 있도록 새로운 권력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동연 경기지사도 개헌을 주장하는 것은 좋은 징조다. 이재명 대표는 개헌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를 제외하고 개헌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건 미래를 위한 조그마한 빛이 될 수 있다. 양 정치 진영이 현재 권력구조나 정치, 탄핵 심판에 대해 불신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권력구조나 시스템을 논의해야 서로 동의할 수 있다.”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 중 어느 게 더 바람직한가.
“순수한 의원내각제로 개편해 국회를 상원과 하원으로 나누는 양원제로 가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다만 대통령제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 절충안으로 대통령은 외교·안보 등 외치를, 총리는 경제·민생 등 내치를 책임지는 이원집정부제도 고려해봐야 한다. 지금 개헌을 하지 못 하면 앞으로 기회가 없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승자독식 정치제도는 중남미나 아프리카 같은 후진국에만 남아 있다. 미국도 대통령제이지만 미합중국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는 성격이 다르다. 국민의힘이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가동하는 것을 보면 개헌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서도 개헌에 대한 찬성 의견이 나오는 것을 보면 개헌이 가능하리라 본다.”
-앞으로 본인이 해야할 역할이 무엇이라 보는가.
“국회의원을 세 번 했고 도지사까지 했기 때문에 내게 남은 정치적 역할은 대통령과 국무총리밖에 없다. 남은 정치 인생에 기회가 없을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 정치를 복원시키고 국민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몸을 던져서 밀알이 될 용의가 있다. 내가 정치를 배운 고(故) 김종필(JP) 전 총리는 노년에 ‘저녁 노을을 붉게 물들이겠다’고 말씀하셨다. 내 몸을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바치겠다는 표현이다. 개인적인 이해득실보다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서 나온 말일 것이다. 나 또한 이런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차근차근 정치적 단계를 밟아 나간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구조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윤 대통령도 대통령이 될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조기대선이 열린다면 유력 주자는.
“지금 상황에서 남의 집인 민주당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지만 만약 조기대선이 열린다면 이재명 대표가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하지만 상식적으로 보면 그는 사법리스크 등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안되는 사람이다.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차기 대선 후보 양자 대결을 보면 이 대표는 충청권에서 오 시장에게 밀리는 결과가 나왔다. 충청도는 정치의 바로미터다. 영·호남과 달리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주는 지역이 아니다. 이런 상황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양 정당이 정치적인 유불리를 떠나서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는 현 정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치적 유불리로 정파가 가면 대한민국 미래는 없다. 지금의 룰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를 봐야 한다.”
-대전과 충남 행정통합이 화두다.
“지금까지는 특별시의 명칭과 비전을 정하는 등 통합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는 시간이었다. 지난해 11월 행정통합 공동선언 이후 민관협의체를 구성, 통합자치단체의 명칭을 ‘대전충남특별시로’ 선정했다. 대전의 연구기능과 충남의 생산·제조 기능을 연계해 시너지효과를 창출,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예정이다. 특히 충남의 반도체, 모빌리티와 대전의 우주, 로봇, 바이오 등 첨단산업을 집적화해서 세계 5위권의 글로벌 도시로 육성해 나가겠다. 앞으로 통합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함과 동시에 법률안을 완성, 국회에서 의결을 받는 등 투트랙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남은 임기 계획은.
“남은 임기에는 그동안 틀을 잡고 계획했던 목표를 위한 실천에 더욱 집중해 도정을 이끌어 나가겠다. 스마트팜 250만평 조성, 126만평 이상 준공, 충남 글로벌 홀티 콤플렉스 본격 조성, 양돈밀집지역에 ICT 융복합 축산단지 조성 등 돈 되는 농업, 청년이 모이도록 농업·농촌의 구조와 시스템을 개혁하겠다. 또 탄소중립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위기를 성장기회로 창출하고, 국가 탄소중립경제를 선도하겠다. 당진 그린에너지 허브, 보령 수소혼소발전소 등 수소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준비하고 해상풍력, 태양광 시설도 늘려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산업용 사용량을 90%까지 확대하겠다. 베이밸리 프로젝트, 충남·대전 행정통합 등 초광역 협력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등 충남의 50년, 100년을 책임질 미래 먹거리도 창출해 나갈 것이다. 천안·아산을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대한민국 디지털 수도로 육성하고 홍성·예산을 행정, 교육, 산업이 어우러진 복합도시로 완성하는 등 지역 5대 권역별 발전전략을 중심으로 균형발전에도 더욱 매진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24시간 어린이집과 마을돌봄터를 각각 25개씩 전 시·군으로 확대하는 등 아이를 낳으면 성인이 될 때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실질적인 저출생 대책을 마련하겠다.”
정리=김성준 기자 ks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