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과 같은 24절기는 2400여년 전 중국 황허강 부근 화북지방 기후를 기준으로 만들어졌기에 우리나라 기후와 잘 맞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입춘은 ‘봄에 들어서는 날’이지만, 봄 날씨인 적은 많지 않았다. 1973년부터 올해까지 53년간 서울의 입춘 평균 기온을 살펴보면 영하인 적은 36차례나 된다. 최고 기온이 영하, 즉 종일 영하에 머물렀던 적도 12차례나 된다. 가장 추웠던 입춘은 2006년으로 최저 기온이 영하 13.1도까지 곤두박질쳤다. 최고 기온도 영하 4.6도에 불과했다. 가장 따뜻했던 입춘은 작년으로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이 각각 영상 12.2도와 영상 3.7도였다.
옛 속담을 보면 입춘 날씨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 ‘가게 기둥에 입춘이라, 입춘 거꾸로 붙였나’ ‘입춘에 장독 오줌독 깨진다’ 등등. 하나같이 입춘 추위를 빗댄 말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입춘인 3일부터 시작된 한파가 5일째 맹위를 떨치고 있고, 이 기세는 다음 주 초까지 이어질 태세다. 올해 입춘 기온은 서울 최저 기온 영하 8.2도로 역대 7번째로 낮았지만, 이후 이어지는 강추위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듯 말이다.
입춘 한파의 원인은 북극의 온난화에서 찾을 수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 관측 결과 지난 2일 기준 북극 기온이 1991∼2020년 평균보다 20도 이상 높았다고 보도했다. 이례적인 온난화는 북극의 공기 흐름마저 무너뜨린다. 북극의 한기는 평소에는 ‘폴라 보텍스(polar vortex)’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갇혀 있다. 하지만 북극의 기온이 오르면 폴라 보텍스를 잡아두던 제트기류가 힘을 잃으면서 냉기류가 남하해 한반도까지 혹한이 찾아오는 것이다. 문제는 북극 온난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극은 1979년 이후 지구 평균보다 4배가량 빠르게 더워지고 있다. 입춘 한파가 달갑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다.
김준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