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별법에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 규정을 넣는 방안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우려가 쏟아지자 핵심 쟁점인 노동시간 예외 문제는 빼고 지원 방안 위주로 법안을 처리하는 것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표의 ‘우클릭’ 드라이브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대표가 대선 공략을 위해 내세운 ‘실용주의’와 전통적 민주당의 정체성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 모양새다.
이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6일 통화에서 “반도체 특별법은 어떤 것도 결정된 게 없고, 당장 속도를 낼 문제도 아니다”며 “이 대표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부싸움 중인 남편과 아내에게 각각 상대방 입장을 전하면서 폭넓게 얘기를 듣는 게 이 대표의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지난 3일 정책토론회를 직접 주재하며 주 52시간제 특례 도입 가능성을 시사한 것에 불만이 제기되자 가속페달에서 잠시 발을 떼는 분위기로 읽힌다.
이 대표는 전날 4대 그룹 관계자들과의 통상 문제 간담회에서도 노사 간 합리적인 논의를 요청하며 “제가 노동계로부터 ‘이재명이 사람 변했다’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 간 접점을 찾기 쉽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주 52시간제 특례 문제는 비명계가 당 정체성을 거론하며 이 대표에게 공세를 펴는 사안이기도 하다. 친문(친문재인)계 5선 이인영 의원은 “민주당은 윤석열이 아니다”며 “(이 대표가) ‘몰아서 일하는 게 왜 안 되냐’고 하는 것은 민주당의 노동 가치에 반하는 주장이자 실용도 아니고 퇴행”이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직격했다. 그러자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맞는다. 민주당은 민주당다운 길을 가야 한다”는 댓글을 달며 공감을 표했다.
민주당 지도부에서도 신중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 대표 역시 지난 정책토론회 이후 “당내 논의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정책조정위원회를 중심으로 우선 논의를 진행하고, 추후 합동·연석회의 등을 거쳐 절충점을 찾아간다는 계획이다.
당 내부에서는 근로시간 특례 문제는 놔두고 여야가 합의한 반도체산업 지원 사안부터 입법을 하는 방안도 고개를 들고 있다.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의힘이 입으로만 급하다고 하는 반도체 특별법을 미룰 수 없다”며 “국가적 지원에는 이견이 없으니 먼저 처리하고, 노사 간 입장 차가 큰 노동시간 문제는 별도 논의를 지속해 합의되는 대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재계를 향해 “사람이 로봇인가”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민주당은 지원 방안만 담긴 반도체 특별법을 여당이 반대할 경우를 대비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진 의장은 “이렇게 갈등이 심한 사안을 일거에 처리할 수는 없고, 이해당사자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