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제3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수상자 전시회가 한창인 서울 종로구 KCDF 갤러리. ‘이건용 특별 초대 퍼포먼스’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주인공인 이건용(83) 작가가 아연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그러곤 한 장 한 장 적힌 이름을 부르더니 바닥에 깔았다. ‘사진작가 천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용호성 1차관’ ‘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김경호’ 등이 소개됐다. 신경다양성 신작 작가를 발굴하는 이 상의 올해 최우수상 수상자 강다연을 포함해 참가를 자처한 관중 3명과 함께 소지품으로 누가 가장 긴 선을 만드는지 시합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넥타이를 풀어서도 안 되자 명함을 꺼냈고, 지폐까지 꺼냈다.
“돈이 나왔는데 요즘 관객은 점잖군요!”(이건용)
“1000원짜리라서 그러지요!”(수상자 어머니)
좌중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이 상의 후원자인 이 작가는 한국의 1960~70년대 실험미술 대가로 수상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퍼포먼스에 나섰다. 공식 퍼포먼스는 2023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한 한국의 실험미술 기획전과 세계 톱 페이스갤러리 개인전에서 선보인 이후 처음이다.
그는 31세이던 1973년 파리 비엔날레에 심문섭 조각가와 함께 한국 대표로 참여했다. 2년 뒤인 75년 첫 퍼포먼스를 했다. 회화도, 조각도 아닌 전위미술을 하고자 하던 욕구가 분출하던 시기였다. 그로부터 50주년이 된 올해 75년 원년의 퍼포먼스를 시연하고자 했고, 그 무대로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수상자 전시회 장소를 택한 것이다.
이 작가는 수상자와 가족들, 미술계 인사, 그의 미술을 사랑하는 팬 등 80여 명이 빙 둘러선 가운데 연극배우처럼 좌중을 쥐락펴락했다. 원년 퍼포먼스 총 6가지 중 ‘다섯 걸음’ ‘동일면적’ ‘장소의 논리’와 함께 ‘이어진 삶’도 했다.
이 작가는 ‘이어진 삶’에 대해 소지품을 꺼내 이어붙이다 보면 관념과 사상 상관없이 자신의 실체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동일면적’은 같은 크기의 큰 종이 두 장을 보여준 뒤 한 장은 그대로 두고, 다른 한 장은 잘게 잘게 찢어 전시장 바닥 곳곳에 펼치는 퍼포먼스다. “이렇게 넓게 퍼져 있지만 원래 크기는 저것과 똑같아요. 당시 권력이나 힘이란 게 사실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겁먹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당시 퍼포먼스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저항의 언어였음을 시사했다.
‘다섯 걸음’은 각기 보폭이 다른 다섯 걸음을 걷고 그 자리에 분필로 표시하는 행위예술이다. 작가는 “삶은 걷는 속도 등 처지에 따라 다 달라진다. 다르다는 것 때문에 겁먹을 필요가 없다”며 수상자들을 격려했다.
국민일보 김경호 사장은 축사를 통해 “오늘 퍼포먼스는 비상업적인 성격으로 화랑에서도 잘 하지 않던 귀한 것이라 한다. 비영리적인 성격은 아르브뤼미술상 취지와도 잘 맞다”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