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미술 대가’ 손 끝에 펼쳐진 진기명기쇼

입력 2025-02-07 02:32
신경다양성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후원자인 한국의 실험미술 대가 이건용 작가가 6일 제3회 수상자 전시회 행사장인 서울 종로구 인사동 KCDF 갤러리에서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건용 특별 초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 작가(맨 오른쪽)가 올해 최우수상 수상자 강다연씨 등 참여 희망자와 함께 ‘이어진 삶’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윤웅 기자

6일 오후 제3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수상자 전시회가 한창인 서울 종로구 KCDF 갤러리. ‘이건용 특별 초대 퍼포먼스’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주인공인 이건용(83) 작가가 아연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그러곤 한 장 한 장 적힌 이름을 부르더니 바닥에 깔았다. ‘사진작가 천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용호성 1차관’ ‘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김경호’ 등이 소개됐다. 신경다양성 신작 작가를 발굴하는 이 상의 올해 최우수상 수상자 강다연을 포함해 참가를 자처한 관중 3명과 함께 소지품으로 누가 가장 긴 선을 만드는지 시합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넥타이를 풀어서도 안 되자 명함을 꺼냈고, 지폐까지 꺼냈다.

“돈이 나왔는데 요즘 관객은 점잖군요!”(이건용)

“1000원짜리라서 그러지요!”(수상자 어머니)

좌중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이 상의 후원자인 이 작가는 한국의 1960~70년대 실험미술 대가로 수상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퍼포먼스에 나섰다. 공식 퍼포먼스는 2023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한 한국의 실험미술 기획전과 세계 톱 페이스갤러리 개인전에서 선보인 이후 처음이다.

그는 31세이던 1973년 파리 비엔날레에 심문섭 조각가와 함께 한국 대표로 참여했다. 2년 뒤인 75년 첫 퍼포먼스를 했다. 회화도, 조각도 아닌 전위미술을 하고자 하던 욕구가 분출하던 시기였다. 그로부터 50주년이 된 올해 75년 원년의 퍼포먼스를 시연하고자 했고, 그 무대로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수상자 전시회 장소를 택한 것이다.

이 작가는 수상자와 가족들, 미술계 인사, 그의 미술을 사랑하는 팬 등 80여 명이 빙 둘러선 가운데 연극배우처럼 좌중을 쥐락펴락했다. 원년 퍼포먼스 총 6가지 중 ‘다섯 걸음’ ‘동일면적’ ‘장소의 논리’와 함께 ‘이어진 삶’도 했다.

이 작가가 '동일 면적'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윤웅 기자

이 작가는 ‘이어진 삶’에 대해 소지품을 꺼내 이어붙이다 보면 관념과 사상 상관없이 자신의 실체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동일면적’은 같은 크기의 큰 종이 두 장을 보여준 뒤 한 장은 그대로 두고, 다른 한 장은 잘게 잘게 찢어 전시장 바닥 곳곳에 펼치는 퍼포먼스다. “이렇게 넓게 퍼져 있지만 원래 크기는 저것과 똑같아요. 당시 권력이나 힘이란 게 사실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겁먹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당시 퍼포먼스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저항의 언어였음을 시사했다.

‘다섯 걸음’은 각기 보폭이 다른 다섯 걸음을 걷고 그 자리에 분필로 표시하는 행위예술이다. 작가는 “삶은 걷는 속도 등 처지에 따라 다 달라진다. 다르다는 것 때문에 겁먹을 필요가 없다”며 수상자들을 격려했다.

국민일보 김경호 사장은 축사를 통해 “오늘 퍼포먼스는 비상업적인 성격으로 화랑에서도 잘 하지 않던 귀한 것이라 한다. 비영리적인 성격은 아르브뤼미술상 취지와도 잘 맞다”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