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사회적 약자 위한 친구가 돼 주길” [인터뷰]

입력 2025-02-07 03:06 수정 2025-02-07 09:47
김현철 연세대 인구와 인재연구원장이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구실에서 의사에서 경제학자가 된 배경을 밝히고 있다. 인터뷰 시작 전 제중원과 연희전문학교 설립자인 호러스 알렌 선교사와 호러스 언더우드 선교사가 나란히 새겨진 접시를 꺼낸 김 원장은 “병원과 전문학교가 합쳐서 연세대가 됐듯 우리 연구소도 상경대학과 의과대학이 연합해 세워졌다”고 설명했다.신석현 포토그래퍼

생업으로 치료 시기를 놓쳐 유방암 말기에야 병원을 찾은 촌부, ‘코리안 드림’을 꿈꾸다 산업재해를 입고 눈물짓는 외국인 노동자, ‘돌봄 사각지대’에 방치돼 인분 가득한 방 안에서 생활하던 뇌병변장애인…. 김현철(48) 연세대 인구와 인재연구원장이 의사에서 ‘세상을 고치는 의사’로 진로를 변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들이다.

진료 현장에서 ‘사회적 약자가 더 아프고 일찍 죽는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한 김 원장은 연세대 의대 졸업 후 경제학자로 진로를 틀었다.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우리 사회의 불공정한 구조를 보완하는 제도가 절실하다는 확신에서다.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학위 취득 후 코넬대와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로 말라위와 가나, 필리핀 등 각국 정책을 분석해 온 그는 지난해 모교에 신설된 인구와 인재연구원 초대 원장으로 부임했다. 우리 사회 가장 큰 숙제인 저출생·고령화 문제에 메스를 대기 위해 고국에 돌아온 셈이다.

‘서울시 인구·저출생 명예시장’으로 선발돼 서울시 정책 수립에도 목소리를 내는 그를 최근 서울 서대문구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조기 대선 가시화로 여야에 제시할 정책 제안에 바쁜 김 원장은 서울 그루터기교회(안용성 목사)에 출석 중인 기독교인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애초 의사가 된 것도 사회적 약자 때문입니까.

“원래 성형외과의가 될까 했는데….(웃음)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생긴 건 한국누가회(CMF·기독 의료인 및 예비 의료인 신앙공동체) 활동 때문입니다. CMF는 제 삶에 정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CMF 지도교수가 전우택 연세의대 교수였는데 경제학 석사 과정을 공부 중이셔서 제게도 경제학 공부를 권했는데요. 이를 계기로 점차 사회과학에 눈을 떴습니다.”

-진로 변경 시 고민이 많았을 듯합니다.

“계속 의사를 하면 안정적으로 살았겠지요. (진로를 바꿀) 의지는 확고했지만 남들이 안 가는 길을 가려니 굉장히 불안했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조언도 구하고 성경도 읽던 중 ‘이 길이 맞는다면 기적을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졸업 전 부모님께 진로를 변경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당시 아버지 사업이 어려웠는데도 제 결정을 존중해주셨습니다. 다만 ‘학비는 못 대준다’고 하더라고요. 의대 재학 중 학자금 융자를 다 받은 상황이라 걱정하면서도 연세대 경제학 석사 과정에 지원했습니다. 추후 합격증을 받아 보니 ‘제1회 연세 특별 장학생’이란 노란 표시가 붙어있더군요. 등록금 면제와 생활비 제공이 되는 장학 제도의 첫 수혜자란 의미였습니다. 저는 이걸 기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에 온 건 저출생·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선지요.

“17년간 해외에서 경제학자로서 저개발 국가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구를 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앞으로 정년까지 17년이 남았더군요. 남은 시간은 우리 사회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출생 문제는 재정을 투입한 데 비해 효과가 미미했다는 평도 있습니다.

“제가 가장 중시하는 게 ‘근거에 기반한 정책 제안’입니다. 일부 정책은 효과가 있었을 것이고 다른 일부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단순히 저출생 추세가 계속된다고 ‘정책 효과는 없었다’고 하는 건 실제를 잘 모르는 얘기입니다. 정책 효과의 증거를 제대로 측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가령 현금 지급 사업은 5% 정도 출산율을 올릴 수 있다는 최근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다만 이를 효과적으로 보는가는 정책 입안자의 판단에 달렸지요.”

-한국교회가 이들 문제에 기여할 방안이 있을까요.

“제도는 이들에게 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친구가 돼 줄 순 없습니다. 친구가 되는 건 돈이 줄 수 없는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거든요.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는(롬 12:15) 역할을 한국교회가 해줬으면 합니다.”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최근 연구소가 집중하는 의제는 ‘이민’과 ‘존엄한 죽음’입니다. 둘 다 고령사회를 맞은 우리나라에서 더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들 의제 외에도 사회적 약자가 존엄한 사회를 위해 앞으로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제도 개발에 힘쓰고자 합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