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데 받아주는 병원이 한 군데도 없더라고, 빡치게. 근데 문제는 그런 죽음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난 내 눈앞에 있는 환자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다짐했지. 뭐, 좀 오글거리지만. 너도 너만의 이유를 찾아. 개같이 구르고 엿같이 깨져도 절대로 변하지 않을 그런 이유.”
중동과 아프리카 전장에서 총상 환자를 살리다 유명무실한 한국대병원 중증외상팀에 부임한 외과 전문의 백강혁(주지훈)이 후배 외과 의사 양재원(추영우)에게 말한다. 적자를 줄이겠다는 병원 측 계략 때문에 소방헬기를 이용할 수 없게 된 구급대원과 의료진은 응급환자를 차량으로 이송했다. 백강혁은 수술실이 아닌 앰뷸런스 안에서 자칫 무리하게 보일 수 있는 처치를 시도했다. 양재원은 “아무도 고생을 알아주지 않는데 그렇게 무리해서까지 사람을 살리려는 이유가 뭐냐”며 맞선다.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을 떠올리게 하는 천재 외과 의사 백강혁과 그를 따르는 의료진의 분투를 담은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가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넷플릭스 시청 순위 사이트 투둠에 따르면 공개 10일 만인 지난 5일 글로벌 TV쇼(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도 3위권을 유지 중이다.
사람을 살리면 살릴수록 적자가 불어나는 중증외상센터 예산 문제를 둘러싸고 병원 내부에선 갈등이 발생한다. 백강혁은 “언제까지 돈 때문에 살 수 있는 환자가 죽어가야 하느냐”며 “외상센터가 적자나 내는 죄인 취급을 받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참을 수 없는 건 이 모든 대가는 환자가 치러야 한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드라마의 신드롬급 인기가 무색할 만큼 권역응급센터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높지 않은 듯하다. 외상 전문의를 육성해 오던 국내 유일의 수련센터가 11년 만에 문을 닫게 생겼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지난 11년간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면서 20여명의 외상 전문의를 배출한 고대구로병원이 오는 28일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센터 운영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역시 돈 때문이다. 고대구로병원은 중증외상 전문의를 육성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2014년 서울지역 외상 전문의 집중육성 수련병원으로 지정한 곳이다. 그러나 복지부의 2025년도 예산이 적게 책정되면서 그동안 정부가 수련센터에 지원해 왔던 연간 9억원 규모의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중증외상 전문의는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다. 일반 응급실이 수용하지 못하는 중증외상 환자들이 모이는 곳이 권역외상센터다. 늘 업무 강도가 높고 고난도 수술을 해야 하기에 지원자가 적다. 국내 외상전담 진료 의사 가운데 수련센터 졸업생이 70%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의료 공백 장기화로 응급의료 체계는 위기에 놓였고 중증외상 전문의 신규 인력을 기르는 일은 난망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6일 “시 재난관리기금 5억원을 투입해 수련 기능을 유지하게 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반토막 난 예산은 국가가 ‘생명의 최전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백강혁은 “이 퍽퍽하고 꺼끌꺼끌한 길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걸어가기엔 너무 되다”고 말한다. 병원에서 자신을 공격하던 동료의 딸을 살려낸 뒤엔 “응급상황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다”는 뼈 있는 한마디를 던진다.
사고와 재난, 죽음의 위기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닥칠 수 있다. 중증외상을 전담할 인력을 포기할 이유보다는 포기하지 않을 이유, 시스템을 유지할 현실적 대책을 찾을 이유가 명확한 것 아닐까.
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