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는 송신은 되지 않고 수신만 되는 단방향통신기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식 명칭은 무선호출기지만 메시지를 수신했을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한 삐삐가 더 널리 쓰였다. 영어권에서도 정식 명칭인 ‘페이저(pager)’보다 메시지 수신음과 비슷한 ‘비퍼(beeper)’라는 명칭이 더 많이 쓰였다. 휴대전화가 일상화된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왜 썼나 싶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획기적인 통신기기였다. 1990년대 후반 휴대전화가 대중화되면서 삐삐 사용은 급감했고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대 들어 일반인 대상 서비스가 없어졌다.
삐삐가 다시 회자된 건 테러 수단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17일 레바논과 시리아 등에서 삐삐 수천대가 동시에 폭발했다. 이스라엘의 공작이었던 공격으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큰 타격을 입었고, 시리아에서도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다음 날엔 무전기가 연쇄 폭발했다. 이틀간의 공격으로 약 40명이 숨지고 34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삐삐의 설계와 제조부터 관여했다. 배터리에 폭발물을 심은 삐삐를 제작해 공급했고, 원격으로 배터리를 과열시켜 폭발시켰다고 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11월 자신이 삐삐 공격을 승인했다고 밝혔는데 더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듯하다. 이스라엘 매체 N12와 AP통신은 네타냐후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황금 삐삐’를 선물했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 정상회담을 할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황금 삐삐와 일반 삐삐 각 1개씩을 건넸고, 트럼프 대통령은 “훌륭한 작전이었다”고 화답했다 한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헤즈볼라를 사실상 붕괴시킨 작전을 되새기는 게 뿌듯한 일이었을 게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쪽 입장에서 보면 도발로 여길 수도 있는데 굳이 삐삐를 선물로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네타냐후는 헤즈볼라가 섣불리 이스라엘을 다시 공격하지 못할 정도로 무력화됐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