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영성가와 그의 딸이 각각 새벽의 채플실과 작은 방에서 묵상한 글과 노래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모새골 공동체 임영수 목사며 연주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국립음대 파이프오르간 디플롬 과정을 마친 오르가니스트 임에스더다.
책에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성경의 메시지를 탁월하게 전달하는 저자의 묵상 글이 40편 담겼다. 피상적인 신앙을 벗고 새로운 실존으로서 인간 자신을 받아들이도록 이끄는 내용이 적잖다. 수년간의 설교 가운데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다룬 대목을 발췌, 수정해 재집필했다. 글의 끝에 실린 기도문에는 고백과 인정, 겸허한 간구가 담겼다.
파이프오르간을 전공한 연주자 임에스더는 15년째 클래식예술문화원을 운영하는 예술 교사다. 이미 대중적으로 공감을 받은 에세이를 여럿 쓴 작가이기도 하다. 프롤로그에 썼듯 그는 흠모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연주에서 황무지 같은 산골짜기 가운데 하나님의 선물을 발견한 구도자의 모습을 봤다. 이 구도자는 바로 그의 아버지였다.
이후 그는 자신을 갉아먹던 삶의 문제를 서서히 달리 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한다. 못 버릴 것 같던 가치관을 비롯해 쌓아둔 물건을 치웠다. 그간 바빠 신경 쓰지 못했던 작은 방엔 오르간과 책상을 들이고 음반과 성경으로 공간을 채웠다.
영성가로서 고뇌하고 마음을 앓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고난과 실수가 반복되는 자신의 삶에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일상을 재구성해 변주한다.
올해로 22주년을 맞은 모새골 채플실에는 독일 수도원에서 사용했던 오래된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이 오르간이 놓인 채플실은 다시 찾은 고향이자 구도자인 아버지 임영수를 그의 삶에 잇대주는 피정(避靜)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그가 연주한 바흐의 수난과 부활 코랄 2곡(BWV 639·605), 찬송가 6곡은 책에 담긴 큐알코드를 활용해 감상할 수 있다. 다음 달 5일 ‘재의 수요일’로 시작하는 올해 사순절에 특별히 잘 어울리는 곡들이다. 책은 독자들이 각자만의 작은 공간에서 피정을 떠날 수 있게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