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인이라면 믿음 안에서 의문 품는 태도 중요”

입력 2025-02-07 03:05
‘온 마음 다하여’의 저자 레이첼 헬드 에반스는 기독교인에게 있어 ‘믿음 안에서 의문을 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에반스의 생전 모습. 바람이불어오는곳 제공

인류사에 지대한 공헌을 남긴 선한 인물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까. 기독교에 관심을 가져본 이라면 한 번쯤 던져봤을 법한 질문이다. 저자 레이첼 헬드 에반스도 중학교 시절 비슷한 의문을 품었다. “‘안네의 일기’ 주인공이자 나치의 희생양인 유대교인 안네보다 기독교인인 나치 관계자가 구원 가능성이 더 클까”란 의구심이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 다수 거주해 ‘바이블 벨트’로 일컫는 미국 남부에서 침례교인으로 자랐다. 복음주의가 일상인 유년 시절을 보내다 기독교계 대학에 진학한 저자는 같은 대학 신학과 교수에게 해당 질문을 던졌다가 “전능한 분께 의문을 가져선 안 된다”는 답을 듣는다. 교수의 눈에 저자는 그저 “세속적 인문주의에 오염돼 선악을 구별할 수 없는 유약한 신자”였다.

“복음주의 기독교와 교회, 이들의 성경 해석은 문제가 없었다. 내가 문제였다.… 너무 많이 질문하지 말고 그냥 믿어야 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던 저자는 ‘규격 외 신앙인’의 길을 택했다. 어릴 때부터 다니던 교회를 떠나 여러 기독교 교파를 탐구한 뒤 성공회 교인이 됐다. 인종과 정치관 등 기존 성향과는 정반대였던 이들과 교류하며 복음주의 교회 밖에서 일하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이들 경험을 책으로 집필한 저자는 미국 MZ세대의 신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국내에도 ‘헤아려 본 믿음’과 ‘다시, 성경으로’ 등 저자의 신앙 여정을 담은 책이 여럿 번역됐다.

성경 본문과 복음주의 전통에 수시로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그가 기독교 신앙을 떠나지 않은 건 “하나님은 인간의 수많은 질문을 능히 모두 다룰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제자인 도마와 베드로도 변덕스럽고 의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성경은 이들을 신실한 인물로 기록한다. 유대교는 아예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을 랍비들이 공동으로 질문하고 탐구하는 ‘미드라시’ 전통이 있다. 질문과 성스러움이 맞닿아 있다고 믿는 유대인은 자녀가 신앙과 관련해 어떠한 질문을 던지더라도 “참 좋은 질문”이라고 답한다. 신학자 레너드 스위트 역시 “성경을 비판 없이 대하는 자세는 신실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미국 복음주의권에 만연한 ‘성경에 의문을 갖다 보면 결국 신앙을 잃는다’는 통념에 그가 정면 반박하는 이유다.

외려 기독교인이라면 특히 ‘믿음 안에서 의문을 품는 자세’가 긴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하나님이 준 양심과 지성으로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지 않은 채 세상을 살면 당신을 이용하려는 누군가의 먹잇감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선악과 내 편과 네 편을 무 자르듯 나누지 않고 삶의 불확실함을 받아들이며 사랑의 본체인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온 마음을 다하는 믿음’이다.

책과 SNS, 강연 등으로 의심하는 신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사회적 약자 차별에 목소리를 내온 저자에게 큰 호응을 보낸 이들은 교회는 떠났어도 하나님은 떠날 수 없던 청년층이었다. 반면 저자를 구약성경에 나오는 악녀인 ‘이세벨’이나 ‘교회의 수치’라고 부르며 “비명횡사나 해라”는 등의 이메일을 보내는 기독교인도 적잖았다.

평소 ‘얼굴은 두껍게, 마음은 부드럽게’란 말을 좌우명 삼아 너그러운 마음으로 교회를 향한 소신 발언을 멈추지 않았지만 도를 넘는 협박 편지에 흔들리는 순간도 있었다고 저자는 고백했다. 이를 극복키 위해 악담을 인쇄한 종이로 종이접기를 하며 마음 치유에 나선다. SNS에서 저자의 행동을 본 한 악플러가 사과의 이메일을 보내자 그는 “인간은 함께 상처받는 존재인 동시에 함께 용서하는 존재”란 걸 깨닫는다.


미국서 2021년 출간된 책은 그의 미완성 유작이다. 2019년 5월 독감 치료 부작용으로 37세에 생을 마감한 저자의 유고를 동료 작가 제프 추가 넘겨받아 완성했다. 그의 마지막 당부는 “아낌없이 그리고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인간이 먼저 (하나님에게) 이렇게 사랑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어판엔 남편과 동료, 친구뿐 아니라 김기석 청파교회 원로목사가 보낸 편지도 담겼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