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정통 신학 표방… ‘새찬송가’ 출간

입력 2025-02-08 03:07 수정 2025-02-08 13:56
장로 교단의 분열은 한국교회 찬송가 사용과 출판에 영향을 끼쳤다. 1962년 출판된 ‘새찬송가’ 표지(왼쪽) 모습과 새로 반영된 ‘예배 전의 묵상’ 설명. 한국찬송가공회 제공

해방의 기쁨을 만끽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한국은 동족상잔의 전쟁 속에 휘말리게 됐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은 합동찬송가(1949)가 출판된 지 1년이 막 지난 시점이었다. 6·25전쟁이 끝나자 이미 진행 중이던 보수와 진보의 신학 논쟁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1959년 예수교장로회는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문제로 두 파로 분열했다. 합동 측은 정통주의 신학을 지지하면서 WCC 가입과 에큐메니컬 운동을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통합 측과 기독교장로회(기장)는 WCC 가입과 에큐메니컬 운동 및 토착화 신학을 찬성했다. 이후 장로교는 여러 차례 분열을 거듭하며 각자의 신학 노선을 따르게 되었다. 앞서 고신 측은 1954년 예수교장로회에서 독립했고, 기장 측도 1954년 6월 대한기독교장로회로 교단 이름을 변경하고 독립했다.

장로 교단의 분열은 한국 찬송가 사용과 출판에 영향을 끼쳤다. 고신과 합동은 1949년 출판된 ‘합동찬송가’를 에큐메니컬 운동의 산물로 판단했다. 두 교단은 성경적 가치관을 반영한 새로운 찬송가를 만들기로 결의하고, 1957년부터 ‘신편찬송가’를 임시로 사용하며 새찬송가 편찬에 착수했다. 1960년 고신과 합동은 ‘새찬송가’ 출판을 결의했고 2년 뒤 새찬송가를 출간했다.

이에 대응하여 감리교 기장 예장통합 성결 기독교연합회는 1963년 찬송가 개편에 합의하고 제작에 나서 1967년 ‘개편찬송가’를 출판했다. 이렇게 당시 각 교단의 신학 논쟁은 찬송가의 출판과 사용에서도 한국교회를 양분시켰다.

새찬송가 편찬에 나선 고신과 합동은 보수신학의 정신을 살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1960년 합동은 고신과 새찬송가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크게 3가지 원칙으로 찬송가를 편찬하기로 했다. 첫째, 신편찬송가를 기초로 한다. 둘째, 구미 각국의 찬송가 중에서 원작의 작사 작곡 출판의 역사를 세밀히 알아내 원곡에서부터 직접 번역한다. 셋째, 미비점을 보완해 완벽한 찬송가집을 만든다.

합동과 고신은 새찬송가를 제작할 때 보수 진영의 찬송가를 대표한다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곡 선정에 신중을 기했다. 번역 또한 원문에서 직접 번역하면서 가사에 담긴 신학적 내용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그 결실이 1962년 12월, 671곡의 찬송과 53편의 교독문으로 구성된 새찬송가이다.

새찬송가는 다양한 찬양집에서 선별됐다. 신편찬송가(1935)에서 356편, 합동찬송가(1949)에서 75편, 청년찬송가(1959)에서 50편, 성가(일본복음연맹·1958)에서 58편, 찬미가(일본기독교단·1954)에서 9편, 미국장로교찬송가집(1955)에서 26편을 선정해 최종 671장으로 출판됐다.

새찬송가의 편집 구조를 보면 전에 없던 ‘예배 전 묵상’ ‘예배 후 묵상’이 추가돼 예배에 임하는 성도들의 자세를 가다듬게 했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각 부분 아래 세부 항목을 배치해 독자 이해를 도왔다. 제목 분류를 살펴보면 1부에서는 찬양과 경배, 성부, 성자, 성령을 다뤘고, 2부에서는 성도의 생애와 교회, 성례전, 3부에서는 일반 성가와 합창곡, 송영으로 마무리했다. 교독문은 시편에서 39편을, 욥기 잠언 이사야 마태복음 고린도전서 에베소서 요한1서 요한계시록에서 주요 구절 14편을 선별했다.

새찬송가의 탄생은 신학 논쟁과 교단 분열의 아픔을 딛고 정통신학을 표방하는 예수교장로교회가 다시 하나 되는 상징적 계기가 됐다. 당시 합동 측은 WCC 가입과 에큐메니컬 운동이 정통 개혁신학의 순수성을 훼손할 것으로 보았다. 이에 보수신학에 입각한 새찬송가를 제작해 사용함으로써 장로교 정통신학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한국 찬송가 출간의 역사는 신학적, 정치적 대립 속에서 교단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는 가운데 발전해 왔다. 같은 장로교 안에서도 신학 노선과 교단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른 찬송가가 편찬되고 사용됐다. 1949년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3개 교단이 연합해 ‘합동찬송가’를 만들어 사용하다가도 각 교단 신학 노선에 따라 다시 교단별로 찬송가집을 직접 제작해 사용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1962년 제작된 새찬송가는 단순한 찬송 모음집이 아니라 정통신학을 견지해온 보수 진영이 에큐메니컬 운동에 맞서 자신들의 신학적 정체성을 지켜내고자 했던 신앙 고백적 결실이었다. 새찬송가의 출판은 당시 신학 논쟁으로 인해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진 한국교회 분열의 단면을 보여주는 시대적 기록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용남 한국찬송가공회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