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작품들에선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현실을 비튼 코미디가 가미돼있다는 점이다.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소재와 이야기를 진중하게 펼쳐놓으면서도 속도감과 유쾌함을 놓지 않은 작품들이 호평을 얻고 있다. ‘중증외상센터’, ‘스터디그룹’, ‘나의 완벽한 비서’, ‘트리거’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설 연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중증외상센터’는 공개 2주차에 접어들었음에도 식지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5일 넷플릭스 투둠 톱10 웹사이트에 따르면 ‘중증외상센터’는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2일까지 1190만 시청 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공개 10일 만에 글로벌 TV쇼 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5주 연속 1위를 지키고 있던 ‘오징어 게임’ 시즌2도 제친 것이다.
이 같은 인기는 ‘중증외상센터’가 생사가 오가는 중증외상센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히어로 면모가 다분한 백강혁(주지훈)을 앞세워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높인 덕이다. 중증외상센터가 놓인 현실적 어려움을 놓치지 않고 짚으면서도, ‘팀 중증’을 이루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주고받는 티키타카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중증외상센터’는 중증외상센터가 갖는 무게감과 답답한 현실에 대한 사회적 관점을 상당 부분 덜어냄과 동시에, 활극에 가까운 가벼움과 장르적 재미를 많이 넣었다. 그래서 시청자가 부담 없이 작품을 쭉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된 것”이라며 “특히 표피적인 웃음이 아니라 캐릭터가 가진 재미나 공감 요소,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에서 비롯되는 블랙코미디나 카타르시스가 더해졌다는 데서 코미디가 효과적으로 작용했다”고 짚었다.
시성비(투자한 시간 대비 만족도)를 중시하고, 짧고 강렬한 콘텐츠에 익숙해진 요즘 시청자는 확실한 효능감과 몰입감을 주는 콘텐츠를 선호한다. 특히 몰입감을 높이려면 지루해질 틈을 주지 않는 게 중요한데, 그 역할을 적재적소에 배치된 코미디가 해낸다. 또 코미디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쉬어갈 틈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콘텐츠 업계는 최근 코미디의 중요성이 더 높아졌다고 본다. 다만 그 코미디가 현실과 맞닿아있는 게 중요하다.
현재 티빙에서 주 2회차씩 공개되고 있는 ‘스터디그룹’도 요즘의 성공 요인을 잘 갖춰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 중 하나다. 문제아 집합소인 유성공고에서 스터디그룹을 꾸려 대학에 가고 싶은 전교 꼴찌 윤가민(황민현)이 숨겨뒀던 싸움 실력으로 ‘의도치 않게’ 학교를 제패해나가는 과정이 웃음을 자아낸다. 공부보다 몸 쓰는 데 재능이 있음에도,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한다는 윤가민의 태도가 묘하게 현실을 비틀어 보여주는 데서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다. 물론 이런 코미디 요소는 충실하게 그려지는 학생들의 성장기, 흥미로운 액션과 버무려져 시너지를 낸다.
SBS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나의 완벽한 비서’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홀로 아이를 키우며 육아·집안일 ‘만렙’을 달성한 싱글대디 유은호(이준혁)가 완벽해 보이지만 어딘가 부족한 대표 강지윤(한지민)의 비서로서 돌봄 능력을 발휘한다. 이는 시청자의 로망을 자극하면서도 드라마와는 정반대인 현실을 꼬집으며 통쾌함을 유발한다. 인물 간의 케미 위에 이 같은 공감, 코미디 요소가 더해지니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반례로 꼽히는 건 tvN에서 방영 중인 ‘별들에게 물어봐’다. 이 작품 역시 이야기 중간중간 B급 코미디 요소가 가미됐지만, 이에 반응하는 시청자는 많지 않다. 정 평론가는 “‘별들에게 물어봐’가 보여주는 건 ‘하이 코미디’(상황 묘사보다 지적인 대화로 구성되는 코미디)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풀고 있지만, 대중에겐 공감의 영역을 넘어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롭게 공개된 작품들도 코미디를 표방한 것들이 많다. 지난 5일 첫 방송을 시작한 KBS ‘킥킥킥킥’은 오피스 코미디를 내세웠고, 7일 공개된 쿠팡플레이 ‘뉴토피아’도 좀비에 로맨스와 코미디를 버무렸다. 이 작품들 역시 코미디가 얼마나 현실과 맞닿아있느냐에 따라 시청자의 반응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