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와 색소폰의 만남… 비주류 경계를 넘다

입력 2025-02-08 00:00
하모니시스트 박종성(오른쪽)과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가 프로젝트 앙상블 ‘더 하모닉스’(The HarmonicS)를 결성하고 지난해 11월 첫 앨범 ‘바운드리스’를 발매하고 공연을 연다. ⓒ뮤직앤아트컴퍼니

하모니카와 색소폰.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탄생한 두 악기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며 사람의 호흡으로 ‘리드’(울림판)를 떨게 해 소리를 낸다. 그리고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에서 블루스나 재즈 등 대중음악에서 큰 사랑을 받는 악기가 됐다.

하지만 두 악기의 역사가 길지 않은 탓에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비주류에 속한다. 특히, 클래식 시장 자체가 작은 국내에서는 더더욱 주목도가 낮다. 하지만 근래 콘서트홀에서 독주 또는 협연 등 다양한 형태로 두 악기를 만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바로 하모니시스트 박종성(38)과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37·본명 최진우)의 활약 덕분이다. ‘악기에 대한 사랑으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꿋꿋이 가고 있다’는 두 연주자가 프로젝트 앙상블 ‘더 하모닉스’(The HarmonicS)를 결성하고 지난해 11월 첫 앨범 ‘바운드리스’(Boundless)를 발매한 데 이어 오는 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연다. 최근 서울 동작구 뮤직앤아트컴퍼니 스튜디오에서 두 사람을 만나 협업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더 하모닉스’의 첫 앨범 ‘바운드리스’ 표지. ⓒ뮤직앤아트컴퍼니

비주류 악기 연주자로서 공감대 형성

두 연주자 모두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직접적인 만남은 2019년 11월 브랜든 최가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에 박종성을 초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콘텐츠의 하나였던 ‘예술가의 가방’ 코너에 나온 박종성은 다양한 음역의 하모니카 10대가 든 가방을 공개했다. 하모니카의 경우 연주 기법과 용도에 따라 크게 트레몰로, 크로매틱, 그리고 다이아토닉으로 나뉜다. 트레몰로 하모니카는 여러 개를 겹쳐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고 조성별로 다른 악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하모니시스트는 대체로 하모니카를 여러 개 가지고 다닌다.

박종성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던 첫 만남에 이어 2021년 8월 제주국제관악제 폐막공연에 우리 둘이 나란히 초청받으면서 친해졌다. 그때 연주자로서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공감대가 생겼다”면서 “무엇보다 둘 다 비주류 악기에 대한 선입견이나 오해를 이겨내온 과정이나 노력이 비슷했다. 또 악기의 스펙트럼 확장과 레퍼토리 개발을 위해 둘 다 작·편곡과 지휘를 하는가 하면 재즈와 국악 등 다른 장르에 관심이 많은 것도 통했다”고 밝혔다.

또 브랜든 최는 “제주국제관악제 이후 종종 만나면서 함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리고 2022년 박종성 씨가 소속된 지금의 매니지먼트로 내가 옮겨오면서 협업이 본격화됐다”면서 “서로의 무대에서 몇 차례 함께 연주해보니 음악적으로도 정말 잘 맞아서 팀을 결성하고 앨범까지 만들게 됐다. 하모닉스는 원래 현악기 주법을 뜻하는 단어지만 우리는 영어 스펠링 앞뒤에 대문자를 써서 하모니카와 색소폰의 하모니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박종성, 국내 최초 하모니카 전공자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그동안 각자 살아온 궤적을 보면 이해가 간다. 박종성은 고등학생이던 2002년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하모니카 대회’에서 금상을 받으며 한국 출신으로 첫 국제대회 수상 기록을 썼다. 당시 하모니시스트가 되겠다는 결심에도 하모니카 전공을 뽑는 국내 음대가 없어서 그는 대안으로 작곡과를 준비했다. 그러다가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학과(실용음악) 관현악 전공에 하모니카 응시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은 뒤 재수 끝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의 등장 이후 여러 음대에서 하모니카 전공자를 뽑고 있다.

이후 한양대 음대 대학원에서 지휘를 공부한 박종성은 4년마다 열리는 ‘하모니카 올림픽’ 세계하모니카대회 트레몰로 솔로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 대회가 유네스코 산하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에 가입되지 않아 군 면제를 받지는 못했다. 당시 군악대가 뽑는 악기 전공에 하모니카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국방부와 병무청에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직접 보냈다. 그리고 국방부로부터 군악대에 ‘작곡병’으로 합격하면 하모니카 연주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그는 “아무래도 내가 국내 클래식계에서 처음으로 하모니카를 전공하다 보니 대학이든 군대든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했다”면서 “결국 군악대에 작곡병으로 입대해 하모니카 연주 활동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나를 계기로 특수 악기 전공 등 다양한 예술 장르 전공자를 뽑자는 여론이 나와 ‘공연예술병’이 생겼고, 여기에 하모니카를 전공하는 후배들이 들어갔다”고 밝혔다.

제대 이후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 그는 ‘박종성의 오케스트라 프로젝트’와 ‘박종성의 실내악 프로젝트’를 기획해 하모니카의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이런 시도 덕분에 그는 2021년 한국에서 첫 하모니카 협주곡인 ‘하모니카 메모리얼’(작곡 김형준)을 헌정 받아 협연했으며, 2023년엔 세계적인 하모니카 악기 브랜드 호너(Hohner)사의 글로벌 아티스트로 선정됐다.

브랜든 최, 클래식 색소폰에 새바람

브랜든 최 역시 클래식 색소폰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잇달아 쓰고 있다. 고교 1학년 때 교내 윈드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고 색소폰에 빠진 그는 전공으로 색소폰을 선택했다. 프로 연주자가 되기엔 늦은 시작이었지만, 그는 중앙대 음대를 거쳐 미국 신시내티 음대에서 석사 및 최연소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리옹 국립음악원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칠 정도로 노력했다. 덕분에 미국에서 신시내티 콩쿠르 1위와 MTNA(전국음악교사협회) 콩쿠르 2위를 차지한 데 이어 한국인 클래식 색소포니스트 최초로 링컨센터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이외에도 프랑스, 크로아티아, 일본 등에서도 초청 리사이틀과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할 만큼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국제색소폰아카데미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쿠바·라틴 음악 중심의 앙상블 ‘브랜든 콰르텟’과 색소폰으로만 이뤄진 ‘브랜든 색소폰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그는 “색소폰이 가능성 많은 악기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내 이름을 내건 단체를 만든 만큼 그만큼 책임감도 크다”면서 “특히 브랜든 색소폰 오케스트라에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절반 가까이 되는데, 내가 그동안 배운 것들을 알려드리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지런한 그는 그동안 색소폰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앨범을 9장 발매했다. 그의 앨범 가운데 2022년에 발매한 ‘라흐마니노프’와 2024년 발매한 ‘베토벤’은 두 거장의 작품을 클래식 색소폰으로 재해석해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올해 국내 클래식계에서 독보적 위상을 자랑하는 더하우스콘서트의 상주 음악가로 선정된 그는 참신한 시도를 보여줄 계획이다. 그는 “박창수 더하우스콘서트 예술감독님의 제안 덕분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4차례에 걸쳐서 해볼 계획”이라면서 “평소에 듣기 어려웠던 색소폰 콘체르토부터 즉흥음악까지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한편 더 하모닉스의 앨범명이자 기념 공연의 부제인 ‘바운드리스’는 ‘경계를 넘어’ 또는 ‘한계가 없는’의 의미로, 클래식을 기반으로 장르의 제한 없이 음악적 지평을 넓혀 온 박종성과 브랜든 최의 행보를 담았다. 프랑스 낭만주의 작곡가 포레부터 아르헨티나 탱고음악의 거장 피아졸라, 한국 록 그룹 산울림과 들국화까지 다채로운 작품이 하모니카와 색소폰을 중심으로 편곡됐다. 공연에는 관객에게 풍성한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두 연주자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피아니스트 조영훈, 베이시스트 김종호가 함께하며 스페셜 게스트로 테너 존 노,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나온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