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고객이라도 더 붙들기 위한 금융사들의 수수료 인하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주식 매매는 더 낮은 수수료로 경쟁하는 단계를 지나 ‘수수료 무료’에 유관기관 수수료를 대신 내주는 증권사가 등장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자산운용사의 상장지수펀드(ETF) 운용 수수료도 역대 최저수준으로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은 ‘슈퍼365’ 계좌를 통한 고객이라면 내년 말까지 국내는 물론 미국 주식 매매수수료에 환전 수수료까지 받지 않는 이벤트를 지난해 말부터 시작했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등 거래소와 결제기관에 내는 수수료까지 떠안았는데, 증권사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증권사 주식 매매 수수료 인하 경쟁은 2000년 키움증권 탄생과 함께 본격화됐다. 과거 국내 증권사들은 0.3~0.5%의 매매 수수료를 받아왔지만, 키움증권은 증권사 영업장 없이 HTS(홈트레이딩시스템)를 통해 매매할 수 있도록 하면서 당시 업계 최저 수수료를 제시해 수수료 경쟁의 법칙을 바꿔놓았다. 여기에 2017년 NH투자증권이 업계 최초로 신규 고객 대상 무료 수수료 정책을 내놓으면서 무료 수수료 정책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상품·서비스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수료 인하나 무료 정책을 내세워 시장 점유율을 늘리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일단 고객을 유치하면 당장 손실을 보더라도 추후 상품 판매 등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메리츠증권은 슈퍼365 계좌는 지난해 12월 12일 예탁자산 2조원을 달성한 이후 이날 기준 4조원을 돌파하는 등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앞서 카드업계에서도 하나카드가 무료환전과 해외 가맹점 결제 수수료 무료 등을 앞세운 ‘트래블로그’를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ETF 운용 보수 인하 경쟁이 치열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6일 TIGER(타이거) ETF 보수를 종전 업계 최저치인 연 0.0098%에서 더 낮추는 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미래운용은 업계 2위 사업자로 1위 사업자인 삼성자산운용과 수수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 운용 수수료 인하로 올해 안에 삼성운용을 추월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삼성운용이 KODEX(코덱스) 미국 대표 지수 ETF 운용 수수료를 연 0.05%에서 0.0099%로 낮추자 미래운용이 이보다 0.0001% 포인트 낮은 수수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운용업계에서는 수수료 인하 경쟁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독창적인 상품 개발보다 손쉬운 수수료 인하 경쟁만 이뤄진다면 운용사 이익이 줄어 지속 성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수수료 인하 여력이 없는 중소운용사가 이탈하면 장기적으로 투자자의 상품 선택 폭이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