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46) 부상 여파로 상금 랭킹 급락… “한물갔다” 악플도

입력 2025-02-07 03:04
최경주(왼쪽) 장로가 2017년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네시스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후배 양용은 프로와 1번 홀 티샷 후 볼의 방향을 살피고 있다. 뉴시스

허리 부상으로 인해 2009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상금 랭킹이 93위까지 떨어졌다. 대회를 한 번 치를 때마다 랭킹이 15계단씩 뚝뚝 떨어졌다. 허리와 장비 문제만 해결되면 회복은 시간문제라고 여겼지만 매주 큰 폭으로 떨어지는 랭킹을 보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던 와중에 후배 양용은 프로가 그해 8월 열린 PGA 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누구보다도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주변에서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KJ, 축하해. 드디어 너희 나라에서도 메이저 대회 우승자가 나왔네.” “그렇게 후배들 챙겼는데 너도 기분 좋겠다. 축하해.” “그래, 고마워. 나도 무척 기뻐.”

평소에 선후배가 함께 다니는 모습을 보고 동료 선수들이 부러워했다. 미국 PGA 투어에 후배들이 들어올 때마다 내가 겪었던 고생을 그들은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섬세하게 챙겨주곤 했다. 언젠가 “아시아 선수도 메이저에서 우승할 수 있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곧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인터뷰한 적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론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 간절히 염원했던 ‘한국인 최초 메이저 대회 우승’을 놓친 것이다. “나는 정말 뭐 하나 쉽게 얻는 게 없네.”

그 당시 온라인에서는 나에 대한 평가가 냉정했던 모양이다. 나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지 꼼꼼하게 챙겨보는 아내가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한물갔다’는 표현은 기본이고 ‘그동안 운이 좋았다’ ‘나이 먹은 퇴물’ 등 악의적인 표현이 넘쳐났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나와 관련된 기사는 잘 챙겨보지 않는다. 인터넷도 잘 하지 않는다. 어쩌면 속 편하게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내는 부정적인 기사가 눈에 띄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 써줬다.

세상이 나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는지 모르니 아내의 상처를 알 리가 만무했다. 아무에게도 못 하는 하소연을 아내에게 쏟아 내곤 했는데, 아내는 아무 내색 없이 평소처럼 다 받아주고 응원했다. 돌아보니 그때 가장 힘든 사람은 아내였겠구나 싶다.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성적이 안 나오고 몸이 말을 안 들어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온종일 연습에 매진했다. 가족과 보낼 시간도 몽땅 연습에 쏟아부었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없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신다.

시즌 중반이 넘어갈 무렵 세계선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12월 말 미국 뉴욕에서 청년 4000여명이 모이는 선교 집회에서 간증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랭킹도 추락한 마당에 누가 내 얘기를 들어줄까 싶었다. “이렇게 어려울 때 해야 진짜가 나오지요. 그래야 더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꼭 와 주세요.” 간절한 부탁에 거절할 수 없어 일단 알겠다고 했다. ‘이 상태로 가면 거짓말밖에 안 될 것 같아. 새벽기도를 나가야겠어.’

집회 20여일 전부터 댈러스 집 근처의 한인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새벽예배에 나오는 사람이 많아 놀랐다. 청년들에게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