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만큼 시대를 이어가며 회자하는 책이 있을까. 손자병법은 기원전 6세기 중국 춘추시대 말기에 쓰인 병법서다. 800년이 지난 2세기 삼국시대 위나라의 조조가 문장을 정리하고 해설을 달아 가장 널리 읽혀 왔던 주석서를 펴냈다. 그리고 다시 1200년이 지나 조선의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손자병법을 포함한 7개의 병서의 해설과 주석을 단 ‘무경칠서주해’가 나왔다. 지금도 손자병법은 개인의 처세서와 기업 경영서, 리더십 계발서로 다양한 변주가 이뤄지고 있다.
전쟁사 전문가인 역사학자 임용한도 손자병법의 해설에 도전했다. 그가 엮어 다시 쓴 손자병법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이었다. 손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쟁의 역사에서 찾고, 전쟁사의 사례와 정밀하게 대조해 해설했다. 손자병법을 오롯이 전쟁으로 풀어냈다고 할 수 있다.
책은 시기적으로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지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누빈다. 등장인물도 카르타고의 한니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프랑스의 나폴레옹,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미국의 패튼과 독일의 로멜, 조선의 이순신 등 화려하고 풍부하다.
‘용병(用兵·병법)은 적을 속이는 것’이라는 말은 손자병법에서 유명한 말 중 하나다. 저자는 손자가 살았던 시대의 국가와 전쟁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때는 청동기 시대였다. 무기는 약하고 전쟁에 동원할 물자와 인구가 적어 전쟁은 가능하면 빨리 끝내야 했다. 손자는 최소의 투자와 희생으로 2배의 성과를 올리는 전술을 연구했다. 그래서 부각된 방법이 속임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속임수가 최대 효율을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저자는 속임수를 위한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면서 손자병법을 곡해한 사례를 제시한다. 일본군의 패배로 태평양전쟁의 향방을 바꾼 미드웨이 해전이다. 객관적인 지표로 보면 미군이 승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본의 항공모함은 9척, 미군은 2척뿐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에 7척의 항공모함을 투입했는데 미군의 전력을 분산시킨다고 쓸데없이 양동 작전을 펴며 2척을 알류샨 열도로 보냈다. 공격함대도 둘로 나눠 전력을 또 분산시켰다. 목적은 미군의 전력을 분산시키는 것이었는데 자신들의 전력만 분산시킨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일본 항공모함 3척, 미군은 1척이 침몰하는 일본의 대패였다. 저자는 “일본군의 작전은 미드웨이 해전뿐만 아니라 태평양전쟁 내내 쓸데없이 복잡하고, 기만 행동과 양동을 너무 좋아하고, 여기에 많은 체력과 시간을 소모하는 경향을 보였다”면서 “속임수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속임수를 위한 속임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자는 “최상의 용병법은 적의 전략을 사전에 분쇄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의 대표적인 게 ‘서희의 담판’이다. 거란의 소손녕이 고려를 침공하자 서희는 이길 가능성이 없었던 전쟁에서 전투 없이 거란군을 철수시켰을 뿐만 아니라 고려가 여진족에게서 탈환하지 못한 강동 6주까지 확보했다. 서희의 성공 비결은 거란의 전략적 목적과 약점을 사전에 간파한 것이다. 거란의 목적은 고려와 거란 사이의 발해 유민으로 구성된 정안국과 여진족, 그리고 고려의 연합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당시 거란은 또 사전에 치밀한 준비 없이 우발적인 공격을 감행한 상황이었다. 서희는 거란의 숨은 전략적 목적과 장기전을 할 수 없다는 약점을 간파하고, 거란과 고려가 연합해서 여진을 협공하자는 구미에 맞는 제안을 했다. 소손녕이 미끼를 물자 협공의 대가로 강동 6주를 고려가 차지한다는 조건을 끼워 넣었다. 그렇게 서희는 적의 목적과 이익을 간파하고 역이용해 싸우지 않고도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손자병법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는 유명한 구절 앞에 ‘싸울 수 있는 경우와 싸워서는 안 될 경우를 아는 자가 승리한다’는 부분이 있다.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은 임진왜란 당시 23전 23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 비결에는 유능한 부하, 조선 전함의 우수성, 거북선, 화포 등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저자는 무엇보다 이순신은 싸워야 할 경우와 싸우지 않아야 할 경우를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손자가 말한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적군과 아군의 전력을 비교 계산해야 한다’는 원칙에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바로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적도 알고 나도 잘 알았다. 조선과 일본의 전함 특성을 파악하고 한려수도와 같은 잔잔한 바다에서 싸웠다. 선조의 독촉에도 부산포 공격에 반대했던 것은 싸우지 말아야 할 곳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조는 이순신을 해임하고 원균을 통해 부산포 공격에 나섰다가 칠천량의 비극을 맞았다.
손자는 손자병법의 대미를 ‘용간(用間)’편으로 장식한다. ‘용간’은 간첩을 운용한다는 의미로 첩보전, 정보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에는 전쟁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이나 국가 운영에도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시대를 앞선 천재의 탁월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춘추시대 말기에 쓰인 손자병법은 첨단 무기가 횡행하는 현대의 전쟁에서도 유효하다”면서 “손자병법에 나온 전쟁의 원리, 군 조직과 장수의 리더십, 분석과 통찰은 사회와 조직, 개인에게도 무수한 영감을 준다”고 말한다.
⊙ 세·줄·평 ★ ★ ★
·손자병법을 전쟁으로 읽다
·리더의 성공과 실패 원인도 볼 수 있다
·손자병법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다면 다른 해설서도 함께 보는 게 좋겠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