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음모론과 괴벨스의 후예들

입력 2025-02-06 00:32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사람들은 믿게 된다.”

나치 독일의 선전부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대중 선동 전략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거짓에 기반한 정치적 선동은 단순하지만 파급력이 크다. 사실에 기반해 합리적으로 반박하려면 수많은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데다 대중은 반박보다 선동을 더 기억하기 때문이다.

비판적 지식인들을 쫓아낸 괴벨스는 당시 독일 가정에 라디오를 보급하고 나치의 선전만 들려줬다. 히틀러 신화화와 유대인 증오를 조장하는 괴벨스의 선동에 세뇌된 독일인들은 결국 2차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전범이 됐다. 최근 한국 사회를 흔드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이성은 필요 없다. 감정과 본능에 호소하라”던 괴벨스의 선동을 떠올리게 한다.

이성과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해킹을 당하고, 그 배후에 중국 간첩이 있다는 부정선거 음모론자의 저급한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투·개표가 ‘실물 투표’와 ‘공개 수작업 개표’ 방식으로 진행되는 데다 그 과정에 오직 대한민국 국적의 공무원, 참관인, 선거인이 참여하고 있어서다. 투표지 분류기를 ‘전자 개표기’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부와의 통신 자체가 단절돼 있기 때문에 해킹이나 조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국가정보원도 이미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23년 7~9월 선관위 전산 시스템에 대한 보안점검 결과 외부 해킹으로 인한 선거 시스템 침해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국정원의 효율적 점검을 위해 보안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고 시행한 모의 해킹을 두고 전산 시스템 무방비라고 비판하는 것은 “100%의 거짓말보다는 99% 거짓말과 1% 진실의 배합이 더 나은 효과를 보여준다”던 괴벨스의 논리와 맥락을 같이한다. 음모론자들은 선관위가 서버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선관위는 이미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등의 검증 요구가 있다면 협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가짜 투표지 등도 법원에서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또 선관위 연수원에 있던 중국인 간첩들이 체포돼 오키나와 미군 기지로 압송됐다는 인터넷 매체의 보도에 대해 주한미군과 미국 국방부는 ‘거짓’이라고 일축했다. 중국 혐오에서 비롯된 가짜 뉴스가 명백한데도 극우 성향의 유튜브와 SNS를 통해 자꾸만 퍼지고 있다. 이는 앞선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자기 확신이 사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SNS의 확산으로 음모론을 조작하고 전파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는 것이다. 과거 나치에 선동 당한 독일과 달리 요즘은 SNS를 통해 누구라도 선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신념 때문이든 돈 때문이든 지난달 윤 대통령 구속 결정에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폭력 난동을 벌인 것은 대표적이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역사학자 페데리코 핀첼스타인이 저서 ‘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에서 거짓말로 정치적 폭력을 방치하고 외국인 혐오를 조장하는 건 나치 등 파시스트들의 전형적 방식이라고 지적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현대적 극우정치의 교본이자 선전선동의 전략가였던 괴벨스의 후예들이 요즘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이 전파하는 가짜 뉴스와 음모론은 사람들을 폭력으로 급진화시키며 정부와 기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켜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친다. 그렇다고 음모론자를 비합리적이라고 경멸해서는 현재 한국 사회의 분열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신념이나 가치에 앞서 냉정하게 과학과 사실을 통해 음모론의 거짓을 계속 밝히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보인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