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독일 ‘슈피겔’지에서 향후 서구 사회를 이끌어갈 철학자 몇 사람을 꼽았습니다. 그에 포함된 재독 한국인 한병철 교수는 시간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은 왜 그토록 빨리, 허망하게 지나가 버리는 것일까. 바쁘게 살았음에도 어째서 남은 것은 없는 것일까. 우리가 직면한 이 문제는 결코 효율적인 시간 관리 같은 것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시간에는 향기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향기 없는 시간도 있다.”
소설 ‘모모’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판타지 소설입니다. 전 세계 수천만 독자를 가진 미하엘 엔데의 1973년 작품입니다. 출간 당시 제목은 ‘빼앗긴 시간을 사람들에게 돌려준 한 아이의 이야기’였습니다.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 회색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시간을 저축하라”는 말로 사람들을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을 분과 초로 계산해 주면서 말입니다.
“당신의 지금 나이가 몇 살, 하루에 자는 시간 몇 시간, 일하는 시간 몇 시간, 밥 먹는 시간, 친구 만나는 시간을 빼고 나면 이제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이만큼.”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들고 찾아가던 시간, 가게를 방문한 고객과 담소를 주고받던 시간, 잠자리에서 하루를 돌아보던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바쁘게 변해 갔습니다.
현대인은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데 익숙합니다. ‘생산성’은 그 시간 안에 얼마만큼 일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단어입니다. 재테크뿐만 아니라 ‘시테크’도 중요해졌습니다.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우리는 인사합니다. 사람이 시간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사람을 소유하는 것 같습니다.
미하엘 엔데는 소설 ‘모모’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시간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본질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는 말합니다. “시간이란 실은 우리 가슴 속에 깃들어 있는 것,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사라져 버립니다.”
성경에는 시간을 뜻하는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가치와 의미로 정의되는 시간 ‘카이로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 참된 그 사랑을 경험하는 시간,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완성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 주님은 모든 시간을 카이로스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매 순간을 사랑하며 살리며 새롭게 하며 사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고전 13:7~8, 새번역)
우리는 결국 매 순간 사그라지는 그 시간을 사랑 속으로 건져 올리기 위해, 하나님 ‘사랑’으로 빚어내기 위해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것이 시간이 가지고 있는 향기이고 가슴으로 시간을 느끼는 방법이 아닐는지요.
소설 ‘모모’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습니다. 마침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시간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멈춰 서서 같이 기뻐해 주었다.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모두 그럴 시간이 있었다.”
올 한 해, 하나님의 시간 속을 걸어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백광흠 목사(한무리교회)
◇한무리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으로 지역 사회를 향한 섬김과 영성을 지향합니다. 백광흠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 미국 뉴욕 포담대학원과 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원에서 상담과 영성을 공부하고 2017년부터 한무리교회 담임으로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