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45) 외국인 트레이너와 원활한 소통 안 돼 몸 관리에 비상

입력 2025-02-06 03:04
최경주(왼쪽) 장로가 2022년 자생한방병원 설립자인 신준식 박사와 경기도 광주 이스트밸리 CC에서 열린 건강지원금 전달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운동선수에게 건강 관리는 숙명과도 같다. 2007년 두 번의 우승으로 상금 랭킹이 5위까지 급상승하고 나니 자신감이 붙고 의욕이 높아졌다. 몸 관리를 잘해서 더 좋은 성적을 내자고 다짐했다. 당시 체중이 92㎏까지 나갔는데 7㎏ 정도만 빼면 몸놀림이 더 날렵해지고 경기력이 향상될 것 같았다. 그런데 호주인 트레이너에게 몸 관리를 받으면서 영어로 대화하자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등 위쪽이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이 백 이즈 타이트(high back is tight)” 정도가 전부였다. 트레이너가 내 짧은 영어를 듣고 나름대로 애써 줬지만 결국 그해를 마지막으로 결별하고 한국인 트레이너를 영입했다. 2008년 1월 소니 오픈에서 7승을 거두고 모든 것이 잘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이상했다. 몸통이 지나치게 돌아가는 것이다. 적당히 꼬였다가 반동으로 풀어지면서 임팩트에 힘이 실려야 하는데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몸이 돌아갔다. 균형을 잃고 힘이 떨어지면서 허리에 통증이 생겼다. 너무 아파서 서 있지 못할 때가 있었다. 면도칼로 생살을 찢는 것 같은 아픔이었다.

“서울 자생한방병원에 골퍼를 위한 척추 클리닉이 있다는데 한번 가보시면 어때요.” 매니저의 권유를 받고도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시즌 중반을 지날 무렵엔 한계가 왔다. 6월 US오픈을 앞두고 매니저에게 “안 되겠다. 자네가 말했던 그 병원 원장을 초대하자”고 했다. 일면식도 없는 분들인데도 흔쾌히 와 주셔서 감사했다. US오픈은 컷 탈락했다.

그전까지는 의사에게 내 몸 상태를 솔직히 털어놓은 적이 없다. 운동선수가 자기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아픈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몸이 망가져 버린 것 같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그간의 일을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들은 신준식 이사장님은 당장 운동을 중단하라고 했다. “침과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3~5개월이 지나면 통증이 일단 사라질 겁니다.”

1년이 지나자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재기할 수 있도록 이사장님이 끝까지 도와주신 덕분이었다.

나는 클럽 무게에 매우 민감하다. 열일곱에 전남 완도에서 골프를 배울 때 어른들에게 채를 물려받아 쓰곤 했는데, 역도로 다져진 엄청난 힘에 비해 너무나 부드러운 채였다. 가진 힘대로 휘둘렀다간 공이 제멋대로 날아다니니 정확하게 공을 맞히는 연습을 해야 했다. 자기 힘에 비해 부드러운 채를 쓰려면 리듬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리듬감을 찾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서 치면 백스윙 가는 속도와 다운스윙 내려오는 속도의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진다.

허리가 아팠던 그 무렵 스폰서가 제공해 준 클럽과 공이 내게 맞지 않았다. 설상가상이었다. 하지만 프로 선수가 자기 스폰서의 제품과 맞지 않아서 못 쓰겠다고 말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허리 부상에 장비 문제까지 겹쳐 그야말로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픈 시기였다. 이듬해인 2009년엔 ‘한국인 최초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는 타이틀까지 날아갔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