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탄 째깍째깍… 수출기업 37% “올해 더 어둡다”

입력 2025-02-06 00:00
게티이미지뱅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관세 전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관세 리스크에 직면한 국내 기업들은 시나리오별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자동차·전자 업종은 미국 관세 정책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와 조선, 방산 등은 영향이 제한적이며, 전력기기·정유 등 업종은 오히려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관세 전쟁 한숨 돌렸지만… 불확실성 여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사실상 관세 적용을 받지 않았던 멕시코와 캐나다를 상대로 25%의 관세를, 중국에는 기존 관세에 더해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관세 조치는 지난 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각국 정상과 통화 후 멕시코, 캐나다에 대한 관세 부과를 30일 동안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관세 폭탄을 당장은 피했지만,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관세 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예 기간 두 국가로부터 국경과 무역 문제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끌어내지 못하면 언제든지 관세 위협을 재개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10%의 추가 관세 행정조치가 지난 4일 발효됐지만, 여기에 더해 최대 60%까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국내 기업들의 수출과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우선 무역 갈등을 부추겨 글로벌 교역이 위축될 수 있다. 이 경우 국내 기업의 수출 물량 감소가 불가피하다. 여기에 보편관세 및 품목별 관세가 한국에 직접 부과되면 대미 수출도 줄어들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출 기업 37.3%는 올해 경영 환경이 작년보다 악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AP뉴시스

자동차·가전, 북미권 관세 직접 영향권

북미권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직간접적인 타격을 받게 될 국내 대기업 계열사는 201곳에 이른다. 5일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25개 그룹의 계열사 110곳이 캐나다에, 91곳은 멕시코에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자동차·가전 등 업종은 직접적인 관세 영향권에 놓인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연간 미국 소매 판매량 170만대 중 미국 현지 생산량은 70만대다. 관세 리스크에 노출된 나머지 100만대 중 85만대는 한국산 물량이고, 기아의 15만대 정도가 멕시코산 물량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한국산에 10%, 멕시코산에 25% 관세 부과 시 현대차와 기아의 영업이익이 각각 1조9000억원, 2조원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기아는 멕시코 생산 물량 일부를 캐나다로 선적하는 방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족해지는 미국 판매 물량은 미국과 한국 공장을 활용해 매울 수 있다. 현대차도 미국 앨라배마 공장, 조지아 공장, 메타플랜트아메리카 공장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가전 업체도 관세가 부과될 경우 부담이 크다. 이에 삼성전자는 건조기 일부를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베트남 등 해외 생산거점 물량을 늘려 미국에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LG전자는 멕시코의 냉장고 생산설비를 미국 테네시 공장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이들 업종이 관세를 맞으면 후방 산업도 간접 영향을 받는다. 포스코는 멕시코에서 자동차와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용융아연도금강판을 연간 90만t가량 생산하고 있다. 포스코는 이 중 미국 수출 물량이 10만t 정도여서 직접적인 영향은 적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멕시코 현지에서 철강재를 공급받아 자동차, 가전 등 완제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고객사가 타격을 입으면 원가 절감을 위해 철강사에 가격 인하를 압박할 수 있다.


보편관세에도 반도체 영향 제한적… 정유 반사이익

미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보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국산 제품에도 10%의 관세가 붙을 수 있다. 반도체 업계는 직접 영향권에 들진 않는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대중국 관세를 경험한 기업들은 이미 대미 수출분을 대부분 한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경쟁사 중 마이크론이 미국 기업이지만 주력 생산기지가 미국이 아닌 일본, 대만, 싱가포르에 있다. 같은 수준의 관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불리하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제품 가격이 상승하면 반도체의 최종 소비처인 정보기술(IT) 기기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물량이 없거나 한국 외 마땅한 대안이 없는 조선, 방산 등 업종은 관세 영향이 미미할 전망이다. 조선업은 특히 미국이 선박을 수입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무풍지대에 가깝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대중국 관세 부과가 이뤄지더라도 중국산 원자재 사용 비중도 작아 영향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방산 기업들도 미국향 무기체계 수출이 거의 없다.

전력기기 업체는 안도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큰 상태에서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향후 한국에 보편관세가 부과되더라도 중국산 전력기기에 더 높은 관세율이 적용될 가능성이 커 악재라 보기 어렵다.

정유사는 관세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업종이다. 캐나다와 미국의 디커플링이 본격화하면 원유 수입 단가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캐나다 원유 업계가 관세를 피해 미국 외 수출로 활로를 모색할 경우 중동이나 중남미 등 다른 원유 업계와 가격 경쟁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정유사 입장에서는 원유 수입처가 확대돼 추가적인 원가 절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