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식구엔 관대, 소비자엔 가혹… 은행 ‘도덕 불감증’ 어디까지

입력 2025-02-04 19:04 수정 2025-02-05 00:43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24년 지주·은행 등 주요 검사 결과’ 발표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KB국민·NH농협은행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정기검사 결과 3800억원대 부당대출이 확인됐다. 이 중 우리은행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이 380억원 더 드러났다. 은행 고위 임직원부터 영업 현장에 이르기까지 부당대출에 연루된 것으로 조사돼 은행 전반에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은 4일 발표한 ‘24년 지주·은행 등 주요 검사결과’에서 우리·국민·농협은행에서 총 482건 3875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은행별 부당대출 규모는 우리은행이 2334억원(101건)으로 전체의 60%를 차지했고 국민은행 892억원(291건), 농협은행 649억원(90건)이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은행권의 낙후된 지배구조와 대규모 금융 사고 등 심각한 내부통제 부실이 재차 확인됐다”며 “은행 자원을 사익을 위한 도구로 삼아 부당대출 등 위법 행위와 편법 영업을 서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우리은행은 손 전 회장 관련 건 외에 전현직 고위 임직원이 연루된 부당대출만 1604억원으로 확인됐다. 총 27명(본부장 3명, 지점장 24명)이 단기 성과 등을 위해 고급 레지던스 취득 등 사업 목적과 무관한 기업 대출을 승인하거나 투자자 날인이 없는 투자계약서 등 서류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고 대출을 내줬다. 대표가 대출 후 잠적하고 법인이 폐업했는데도 정상 대출로 분류하기도 했다. 그 결과 1229억원(76.6%)이 상환되지 않아 부실화됐다.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적정 대출도 기존 350억원에서 380억원 늘어난 730억원으로 최종 집계됐다. 338억원(46.3%)은 이미 부실화됐으며, 나머지도 부실화 가능성이 큰 것으로 금감원은 보고 있다.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은 영업점 부당대출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대부분 은행 직원이 브로커 등과 공모하는 형태로 이뤄졌고, 국민은행 일부 대출에선 팀장이 금품·향응을 받은 정황도 포착됐다. 농협은행은 지점장이 허위 매매계약서를 근거로 감정평가액을 부풀리는 식으로 부당대출을 내준 후 차주에게 1억3000만원을 받았다.

금감원은 금융사가 금융 사고를 축소하려 하거나 사고자를 온정주의적으로 조치함으로써 대규모 금융 사고가 반복되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지적했다. 우리은행은 손 전 회장의 행장 재임 시절 대폭 완화한 여신 관련 징계 기준을 현재까지 방치했다. 중과실 사고에서 타 은행은 귀책 금액이 2억원 이상인 사고자에 대해 감봉 이상의 중징계를 내렸지만 우리은행은 10억~20억원의 손실을 내도 견책에 그쳤다. 국민은행은 영업점 전결 여신에서 금융 사고가 자주 발생함에도 영업점 내부 감사 주기를 3년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감사 기간도 3~4영업일에 그쳤다.

반면 소비자에겐 가혹했다. 다수 은행이 연체 발생 시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서민의 최저생계비까지 부당하게 압류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은행은 최근 10년간 고객 4만6000명에게서 약 250억원의 압류금지 채권을 부당 상계했다.

이 밖에 금감원은 금융지주와 은행이 자본비율 산출 과정에서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고 이를 인식·측정·관리하는 업무도 미흡했다고 꼬집었다. 우리·KB금융지주는 계열 신탁사 손실 발생에도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이를 모두 반영하면 두 금융지주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0.1~0.2% 포인트 하락한다고 금감원은 추정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