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폭탄’을 자신의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협상 수단으로 휘두르면서 한국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트럼프발 관세 폭탄이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동맹국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는 데다 관세를 활용해 주요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사례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관세 엄포’를 쏟아낼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면서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 8위국인 한국이 ‘관세 청구서’에 직면할 시점도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4일 “트럼프 1기에 이어 2기에서도 대미 무역수지 흑자 등을 빌미로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반도체, 자동차 등의 미국 현지 생산 등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미 정부 지출 축소’와 ‘대중 견제 확대’라는 두 가지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 관세 부과 조치를 받아든 상대국이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할 경우 관세를 유예해 주는 ‘시혜성 성격’도 뚜렷하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의 25%의 관세 부과 조치를 피하기 위해 지난 3일(현지시간) 국경 지역의 불법 마약 유통을 막기 위해 1만명 규모의 방위군을 배치하겠다고 선언했고, 미국은 즉시 관세 조치를 30일 유예했다. 콜롬비아 역시 미국 내 불법 이민자 수용을 거부하다 25% 관세 부과 조치를 받고는 9시간 만에 전면 수용으로 백기를 들었다.
조연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각국 정책 당국자와 금융시장의 학습효과도 더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임기 초반에 정치적 성과를 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타깃이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 순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도 한국 경제의 불안 요소다. 지난해 기준 대미 무역흑자 순위 1, 2위인 중국과 멕시코, 9위인 캐나다는 이미 미국의 관세 타격에 직면했고, 대미 무역흑자 3위인 베트남과 6위 대만은 유력한 차기 관세 부과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미 흑자 5위국인 독일은 미국의 ‘EU 10% 관세 부과’ 움직임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미 흑자 7위 일본은 7일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관세 부과를 피하기 위해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의 조치를 꺼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추이와 주요국 대응을 살펴보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이날 제6차 대외경제현안간담회에서 “미국의 관세 조치와 각국의 대응이 이어질 경우 우리 수출과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며 “각급 협의체를 통해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우리 업계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점검하겠다”고 강조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