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인디라 간디 인도 총리가 시크교도 경호원에 의해 암살된 후 힌두교도들은 수천 명의 시크교도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고 이에 시크교도들이 복수에 나서면서 피의 종교분쟁이 진행됐다. 인도 북서부 펀자브주에서 일어난 유혈폭동이다. 이 폭동은 경찰도 군대도 막지 못했다. 도시에 피의 강이 흐를 정도로 유혈극은 확산됐다. 당시 펀자브 의대학장이자 찬디가르 병원장으로 일하던 차우다리 박사에게 찾아온 미국의 한 중보기도팀이 있었다. 차우다리 박사는 병원장실에서 그들과 함께 이 유혈폭동이 멈추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놀랍게도 그다음 날부터 유혈극이 멈췄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날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찬디가르에서는 단 한 건의 분쟁도 발생하지 않았다. 명백한 기도 응답이었다. 그리고 지금 찬디가르와 펀자브주에서는 전무후무한 부흥과 추수가 일어나고 있다. 차우다리 박사는 이후 중보기도의 엄청난 위력을 영혼 구원에 적용하면서 제자들과 함께 힌두교 마을에 수십만 개의 교회를 개척했으며 세계적인 영혼구원운동과 인도 부흥을 이끌고 있다.
미국의 부흥을 주도하는 인물은 류 잉글과 딕 이스트만이다. 잉글 목사는 센드(SEND) 운동을 통해 수십 만의 청년들을 동원할 뿐 아니라 전 미국의 중보기도운동을 주도하는 선지자적 영성을 가진 분이다. 이스트만 목사는 ‘모든 가정을 그리스도에게(Every Home for Christ)’라는 선교단체를 통해 전 세계 100여개국에서 매년 200만명 이상을 전도한 분이다. 하루 2~4시간 돌파기도를 하는 영적 거장이다.
이 두 분이 사실상 미국의 빌리온 소울 하비스트(BSH) 운동에 비전을 불어넣으며 기도로 이끌어가는 리더십이다. 이밖에도 중국 가정교회의 상징인 쉬용저 목사, 아프리카 기도운동을 주도하는 우카치 목사, 중국계 기도운동의 중심인 앤드류 장 장로, 중동의 기도운동을 이끄는 이집트의 마우리스 박사 등도 BSH 운동을 이끄는 용장들이다.
특히 낙태법 폐지를 관철해 전 미국을 진동시킨 잉글 목사는 세계 선교에 있어서 돌파기도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는 첫 번째 BSH 대회에서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마 9:37~38)는 말씀을 선포하면서 “이 구절이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란 것을 감안하지 않으면 대단히 오만한 말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선교사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선교운동이 기도운동과 연결될 때만 영혼구원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세기 최고의 크리스천 경세가인 앤드류 머레이는 “교회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세계 복음화에 역사상 가장 큰 공헌을 하게 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본래 의도를 파악해보자. 추수할 일꾼에게 ‘청하다(ask)’는 말은 원어로 ‘데오마이’인데 이는 ‘거지가 구걸하듯 절박하게 애원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보내어 주소서’라는 구절에서 보낸다는 말은 원어로 ‘에크발로’로 ‘던져 버리다’ ‘강제로 흩어버리다’의 뜻이다. 다시 표현하면 ‘추수할 것은 너무 많고 일꾼은 너무 부족하니 주인에게 간절히 매달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꾼을 강제로 흩어 선교의 현장에 던져달라고 구걸하듯 간청하라’는 의미이다. 결국 이 말씀은 영혼을 추수하게 된 시기에 급진적 중보기도와 강권적 복음전도를 명령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주님은 모든 마을과 도시들을 다니시며 치열한 영혼구원의 현장을 경험하셨고 자신과 같은 전도사역자가 100만 명 이상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리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제안하지 않고 명령하셨다. 권면이 아니라 상황에 관계없이 즉각 순종하라고 했던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든 주님이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실 때처럼 똑같이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불같은 구령 열정이 타올라야 한다.
물론 성도들의 은사와 직임이 다르고 상황이나 처지가 달라 모두가 복음전도와 선교에 전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 4:35)는 말씀을 붙잡고 동일한 상황 인식을 가지고 기도할 수는 있다. 주님은 앞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는 말씀으로 사명의 양식을 언급하신다. 굶주린 거지가 양식을 찾듯 영혼 구원을 갈망하는 기도의 사명자들이 일어나길 기도한다.
10억 영혼 구원을 외치며 전 세계를 다니다 보니 죽어가는 영혼들이 보이게 되고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됐다. 급한 일에 몰입하다 보면 중요한 일을 놓치게 된다. ‘중요한 사명이 먼저(First things first)’가 절실한 시대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는 말씀처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둔해지고 있다. 이제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가장 좋은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영혼구원을 위해 절박하게 기도하든지,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복음전도자가 되든지.
추수꾼이 일어나도록 구걸하듯 간청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도는가. 직접 뛰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은 뒤에서 기도로 동역하는 일이다. 모세 뒤에는 아론과 홀이 있었다. 사무엘 뒤에는 한나가, 다윗 뒤에는 나단이, 에스더 뒤에는 모르드개가, 사도 바울의 뒤에는 뵈뵈가, 허드슨 테일러의 뒤에는 죠지 뮬러가 있었다. 진짜 주역들은 뒤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