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선에 파병된 북한 병사는 우리에게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가족사진을 고이 품고 타국에서 숨진 한 청년의 처절한 삶이 애처롭다가도 세습 독재자를 호명하며 산화하는 모습에선 형용키 힘든 거북한 감정이 든다. 우리를 상대로 향후 써먹을 수 있는 실전 경험을 쌓는 점도 거부감을 일으키는 한 요소다.
참전의 명분을 어디서도 찾기 힘든 이들의 비극을 외면할 순 없는 건 오준 전 유엔 대사의 말대로 “한국인에게 북한 주민은 아무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70년 넘게 떨어져 있지만 지금도 북한 주민은 누군가의 혈육이자 이웃이다. 나아가 같은 인간이자 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이들의 무사 귀환과 한반도 평화를 간절히 염원하는 기독교인도 적잖다.
국민일보 토요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만 3년이 되는 24일을 앞두고 평화 통일을 위해 기도해 온 30대 탈북민 남성 사무엘(가명)씨와 대학생 도유진(24)씨가 북한 병사를 향해 부친 편지를 공개한다. 기독교 박애 정신을 바탕으로 작성된 두 사람의 편지에는 분단의 냉엄한 현실을 초월해 함께 평화를 일궈가자는 간절한 소망이 담겼다.
“한 가정의 일원인 당신은 귀한 존재”
사무엘씨는 지난 2010년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5개월여간 숨어지내다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살이 15년 차인 그는 자신을 “북한이 탄압하는 기독교에 몸을 푹 담그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변 보안상 가명을 쓰면서도 펜을 든 건 “남을 죽이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사랑하고 그의 아픔을 아는 게 (인생의) 본질”임을 북한 병사에게 전하고 싶어서다.
남북한 양국에서 6·25전쟁이 한민족에 남긴 상흔을 다각도로 확인했다는 사무엘씨는 “러-우 전쟁 소식을 들으면서 많은 아픔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전쟁 발발보다 더 슬프고 안타까운 건 (전쟁에 참여한) 각 개인이 부모와 자녀가 있는 아들이자 아버지라는 것”이라며 “각 가정의 귀한 존재인 이들이 국가 간 불화로 전쟁 속에서 죽어가는 걸 보는 게 참 가슴 아프다”고 적었다. 이어 부모와 형제자매, 자녀를 등지고 혹독한 추위 가운데 사망한 북한 병사의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북한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러시아 군인 모두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사무엘씨는 “속히 (각국이) 평화적으로 사랑과 우정을 쌓아갈 수 있길 기도한다”며 “‘지는 게 곧 이기는 길’이란 평화적 본질을 잊지 말자”고 강조했다.
편지를 읽을 이름 모를 북한 병사를 향해서는 “꼭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는 말도 남겼다. 그는 “누군가를 위해 편지를 써 본 적 없어 매우 서툴지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글을 맺었다.
“피 흘림 없는 통일 위해 기도 중”
서울교육대 학생으로 현재 초등교사 임용시험을 준비 중인 도씨는 매주 목요일 열리는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쥬빌리·대표회장 오정현 목사)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 통일을 위해 기도한다. “비무장지대(DMZ)를 경계로 남쪽과 북쪽에서 태어난 우리가 편지로만 간신히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는 그는 최근 인천 강화도의 망향대를 찾았다.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며 만든 망향대에선 북한 땅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 도씨는 편지에서 “망향대에서 4㎞ 정도 떨어진 북한 땅은 매우 고요해 보였다. 북한 병사들이 간 곳은 두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더 먼 이방 땅일 것”이라며 “그곳에서 안전히 고향 땅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길 기도한다”고 적었다.
평화 통일을 위해 한국 기독교인이 매주 모여 손 모으고 있다는 사실도 전했다. 그는 “저 혼자만 기도하는 게 아니”라며 “통일을 꿈꾸며 전쟁의 위협이 없는 안전한 나라, 남북이 하나 된 나라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길 고대한다”고 했다. “지금 이 시기가 어둡고 막막해 보이더라도 (추후) 더 밝게 빛날 시기를 기대하자”는 소망도 전했다.
복잡다단 정세 속 평화 노력 이어가야
현재 국내 일반에서 얻을 수 있는 북한 병사 관련 소식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외신이 공개한 정보가 대부분이다. 러시아가 북한군의 참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선에 배치된 북한 병사 관련 소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되 같은 민족으로서 평화와 협력 자세를 잃지 말 것을 주문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지난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심리전이 동반되므로 관련 소식에 대해 지나친 확신도, 음모론적 접근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전·선동의 영향이 크기에 관련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사실관계를 검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북한이 설령 러시아와 동맹 관계라 하더라도 부유한 나라면 굳이 파병을 감행할 이유가 없다”며 “남북 간 대립보다 한반도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 협력을 위한 기도가 필요한 시기”라고 봤다.
북한을 단일한 적으로 보기보단 다양한 주체로 세분화해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핵심 권력층인 백두혈통과 밀접한 이들은 주적이 분명하나 대다수 병사는 명령에 따라 전쟁터로 보내졌을 뿐”이라며 “이들을 적대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핵보유국이 비보유국의 영토를 침탈한 제국주의적 전쟁”으로 러-우 전쟁을 정의한 박 교수는 한국교회가 더욱 정교한 시각을 갖고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이 전쟁은) 단순히 국제정치적 사안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당면한 문제”라며 “북한이 조속히 파병을 철회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휴전해 중동 질서가 재편됐듯 러-우 전쟁에 미칠 ‘트럼프 현상’을 주목하라는 견해도 있다.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에게 100일 내 전쟁을 끝내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러시아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며 “국제 사회 속 종전 분위기를 타고 양국 간 평화 협상이 타결되도록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해당 과정이 진행되면 전선의 북한군도 자연히 철수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했다.
교계 통일사역단체는 복잡다단한 국가 간 역학관계를 넘어 한 영혼을 살리는 마음으로 한반도 평화와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자는 입장이다.
오성훈 쥬빌리 사무총장은 “기도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는 것”이라며 “자기 정체성도 제대로 밝힐 수 없는 상태로 전장에 선 이들이 생명을 보존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했다. 오 사무총장은 “러시아에 그리스도교 일종인 정교회를 믿는 인구가 적잖은 만큼 러시아군과 협력하며 복음을 접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포로로 생포된 북한 병사가 고향의 가족과 재회하는 것’을 놓고도 기도 중이다. 그는 “속절없이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의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전투 중 포로로 잡힌 이들이 국제 협약에서 보장된 인권을 보호받으며 가족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민경 김수연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