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헌법에 이어 두 번째로 서명한 법안은 관세법이었다. 땅이 넓고 자원과 인구가 많아 잘 살아갈 여건이 갖춰졌는데, 아직 제조업이 부족했다. 이를 육성하려 유럽 공산품에 맞설 관세장벽부터 쌓고 나라 운영을 시작했다. 국민에게 소득세를 걷는 대신 외국 제품에 세금 물려 곳간을 채운 이 신생국가는 독립 후 100년간 연방정부 재정수입의 80% 이상을 관세로 충당했다.
워싱턴의 보호무역주의를 이후 대통령들은 충실히 따랐다. 에이브러햄 링컨도 관세 확대 공약으로 북부 공업지대 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의 관세정책은 남부의 농산물 수출을 어렵게 해 남북전쟁의 원인이 됐는데, 북부가 승리하며 미국의 통상 기조로 유지됐다. 유럽 국가들이 미국 시장 문턱을 낮추려고 줄기차게 압력을 가했지만, 링컨의 사령관 출신인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은 “자유무역은 200년 뒤에나 하겠다”면서 단호히 거절했다.
1930년 대공황이 닥치자 미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며 관세를 평균 59%로 대폭 인상했다(스무트-홀리 관세법). 이는 세계 무역을 3분의 1로 쪼그라들게 했고, 그 경제적 혼란 속에 유럽에서 파시즘이 등장해 2차 대전이 터졌다. 전쟁을 겪으며 유럽 산업이 망가지자 경쟁력 우위에 선 미국은 돌연 자유무역 신봉자로 변신해 관세협정(GATT) 자유무역협정(FTA) 세계무역기구(WTO) 창설을 주도했다.
그래서 형성된 자유무역 질서를 자칭 ‘관세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뒤흔들었다. “미국의 적이 되는 건 위험하지만, 친구가 되는 건 치명적”이란 외교가 격언을 입증하듯 동맹국에 관세폭탄을 던져대고 있다. 미국 역사에서 자유무역 시기는 얼마 안 되니 본모습을 드러내는 걸 수도 있겠다. 캐나다·멕시코와 잠시 휴전했지만, 그의 관세 협박이 왠지 협상용에만 머물지 않을 것 같다. 이 장사꾼 대통령은 정말 관세로 돈을 벌려는 것일지 모른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더니, 혹시 관세로 나라 곳간을 채우던 때로 돌아가자는 뜻이었나….
태원준 논설위원